이사야 53:4-6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메시야가 창에 찔리고 매를 맞아 죽으셨다.
하: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나: 사람들 앞에서 착하게 살기보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났을 때 모두가 경악을 하고 외면을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렇게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렇게 고통을 겪으시고 그 고통이 만성화되어 병처럼 된 것은 바로 우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3절은 고통이 먼저 나오고 병이 나중에 나왔다. 하지만 4절은 병이 먼저 나오고 고통이 나중에 나온다. 개역개정은 3절을 간고와 질고라고 하고 4절은 같은 말을 질고와 슬픔이라고 번역했다. 새번역은 3절을 고통과 병이라 하고 4절은 고통과 슬픔이라고 했다. 그러나 원어는 3절의 병과 슬픔이 4절에서는 슬픔과 병의 순서로 데칼코마니처럼 찍여 나온다. 3절에서 하나님의 종 메시야의 슬픔과 병이 4절에서는 우리의 병과 우리의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다.
4절 뒷부분은 이어서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하였다" 라고 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메시야가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징벌을 받았다는 말은 문둥병에 걸렸다는 때 쓰던 말이다. 메시야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심각한 벌을 받았기에 문둥병자처럼 멀리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 맞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고난은 자신의 죄 때문이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어떤 이들은 40:2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벌을 받았기에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 생활을 통해 받은 벌은 일시적인 것이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죄를 속하는 것이 일시적인 것처럼 이스라엘이 받은 벌은 일시적인 것 뿐이다. 그러나 메시야가 대신 고난을 받은 것은 영원한 대속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선지자 이사야를 비롯해서 함께 있던 이스라엘 사람이다. 확대하면 모든 죄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는 5절에서 누구 때문에 그렇게 벌을 받고 계신지 분명히 밝힌다. 먼저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 했다. 찔린 것은 창이나 칼에 찔리는 모습이다. 이는 반드시 죽는 상태를 말한다. 그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돌에 깔리거나 말이나 마차에 깔리듯 눌려서 터지는 모습이다. 단순히 타박상을 입었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어릴적 짖궂은 아이들이 개구리나 뱀을 밟아 터트리는 모습과도 같다.
그렇게 메시야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평화를 누린다는 말은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어 더 이상 슬픔은 없다는 뜻이다.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가 죄 때문에 슬픔과 고통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신 찔려 죽고 대신 맞아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고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어떤 사람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것온 오직 하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셔야만 가능하다.
6절은 "우리는 다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다 양떼처럼" 이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다 각기 제 갈길로 갔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양떼로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따라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은 어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는 것이다. 메시야는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3:10-12절에서 의인은 하나도 없다라고 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기 탐욕을 따라 죄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조금 선하다고 하겠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더럽고 추한 죄인들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모든 죄인들을 위헤 그렇게 창에 찔리고 매를 맞으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