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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52:13-53:3

Dawn Word

이사야 52:13-53:3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2018. 12. 20.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52장 강해 설교

이사야 52:13-53:3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났을 때 모두가 경악을 하고 외면을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렇게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하: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나: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예수님처럼 낮은 모습으로 섬기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자. 이 땅에서 높아지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자. 우리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다.

이전 말씀에서는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이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다스리실 것이니 부정한 곳에서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 주시며 우리와 동행하실 주님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나 놀랄만한 내용이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 백성을 구원하셔서 지키주시는 주님은 압도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분으로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10절에서 그 백성을 안아주신 주님의 팔이 53:1절에서는 하나님의 종의 팔이 된다.

13절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구를 보라는 것인가? 그 다음에 "나의 종은" 이라는 말로 이어지기에 하나님의 종 메시야를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 메시야는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형통할 것이라" 라고 했다. 그러나 개역과 새번역 모두 난하 주석에 보면 개역은 "지혜롭게 행하리니" 라고 했고 새번역은 "슬기롭게 행동할 것이다" 라고 했다. 영어 번역들도 NASB와 NLT는 "will prosper" 라고 번역했고 ESV와 NIV는 "shall act wisely" 라고 번역했다.

원문의 뜻은 이 두가지를 다 포함한다. 하나님의 종 메시야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옳은 일들이 무엇인지 다

알고 행하시는데 그 일들을 다 이루신다는 것이다. 다 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번역한 사람들은 지혜롭게 행한다고 한 것이고 다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형통한다고 번역한 것이다. 메시야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

아시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슬기롭게 행동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모두 다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시면 그 결과로 "받들어 높임을 받고 크게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받들어 높임을 받고" 라는 말은 이사야 6:1절과 33:10절과 57:15절에도 나온다. 모두 다

높이 올려진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묘사할 때 쓴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종 메시야도 역시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다.

"받들어" 라는 말은 키가 큰 나무나 높은 곳에 올려진 보좌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높임을 받고" 라는 말은 올려지는 동작이 강조된 말인데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올려졌다는 뜻이다. 그 뒤에 또 "크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한 말도 역시 높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단히 라는 말이 붙어 있기에 더 아주 높이 올려지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슷한 말을 세번 쓴 것은 점점 더 높여지는 하나님의 종 메시야를 나타낸 것이다.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14절은 "그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놀랐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그렇게 놀랐는가? 이것은 9절과는 완전히 반전된 모습이다. 놀랐다는 말은 아주 끔찍스러운 것이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워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먼저 "안되어 보였고" 라는 말은 건물이나 땅들이 다

무너져 황폐화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메시야의 모습이 어떤 인간들 보다 더 비참해 보였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아들들 보다도 더 비참해 보였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메시야의 모습이 어쩌면 저리도 초라하고 비참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하며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들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14절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놀란 모습이라면 15절은 온 세상 이방나라들과 그 왕들이 메시야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는 뜻이다. "이방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라는 말은 놀라 펄쩍 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해석자들은 14절에서는 비참한 모습에 놀라지만 15절은 그 영광된 모습에 놀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연결이 안된다. 이렇게 놀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끔찍한 모습에 놀라 펄쩍 뛰며 기절할만큼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방 나라들의 왕들은 메시야의 이런 모습 때문에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듣지 못한 일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듣지 못한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5절 맨 끝의 "볼 것이다" 라는 말은 보고 분간하거나 이해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다 놀란 것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 그렇게 비참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에 놀라는 것이다. 1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경악을 했다. 그러나 15절에서는 모든 이방 나라 사람들과 이방 나라 왕들이 경악을 한 것이다. 그러나 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 했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15절에서 경악을 했던 이방 나라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은 나중에는 이해했기 때문에 그렇게 경악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 그렇게 비참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를 이방 사람들은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53:1절은 모두가 왜 그렇게 메시야에 관해 경악을 했는지 말한 것이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라고 했다. 답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라고 했다. 주님의 능력이란 주님의 팔이란 뜻이다. 주님의 팔을 누구에게 드러내 보였느냐는 뜻이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도 들은 것을 믿지 않았고 또 주님의 팔이 나타났을 때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2절은 52:14절에 나타난 비참한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다. 2절은 사람들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팔 즉 하나님의 능력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력한 힘이 있고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멋진 하나님의 메시야가 나타나길 기대했다. 드럼을 치고 나팔을 부는 군대의 개선 행진과 함께 오는 찬란한 영광의 왕을 기대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하던 하나님의 능력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사야가 말한 하나님의 능력은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라고 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 나타나서 자라고 있는데 그 모습은 참 볼품도 없고 연약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라고 했다.

3절은 하나님의 능력인 메시야가 멸시를 받는 모습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라고 했다. 이는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모습이 단계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하나님의 메시야는 멸시를 받는다. 그 다음에는 거부를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고통을 많이 겪었다" 라고 했는데 원어는 "슬픔의 사람" 이란 뜻이다. 사람들에게 버려졌기에 슬퍼하는 사람인 것이다. "병을 앓고 있었다" 라는 말은 슬픔이 계속 되어 만성적인 질병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그 멸시와 슬픔과 고통과 질병은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는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을 때 그 백성들은 그 비참한 모습에 경악을 했고 결국 거부하며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고 다른 메시야를 달라며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방 사람들도 놀랐지만 그 중에는 깨닫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놀랍게도 이사야 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를 믿고 있다. 멸시당하고 버림 받으며 우리를 위해 고통과 슬픔을 대신 지셨던 그 메시야가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메시야를 믿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경악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가복음 8:34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했다. 자신의 탐욕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 멸시와 천대를 참고 견디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시고 버림을 받으셨다면 우리도 역시 그러한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 빼버리고 오직 존귀와 영광의 주님만 찾으며 예수를 믿으면 자신들도 이 땅에서 그렇게 존귀와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생각만 하고 믿는 것은 완벽한 우상숭배이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며 멸시를 받으셨으니 우리도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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