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39-42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을 피해 요한에게 침례를 받던 곳으로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요한이 증거한 말이 참되다며 예수님을 믿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돌로 치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너희도 하나님 노릇하면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자신을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어찌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하시며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계속해서 배워가야 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하지 피하셨고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와서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이 모두 참되다며 많은 사람이 믿었다는 내용이다.
39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서로의 안에 함께 존재한다고 분명히 말했기에 이번에는 예수님을 다시 잡으려고 했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시고 말씀을 하셨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완전히 이르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서 피하셨다.
40절은 다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셨다고 했다. 에 보면 그 피하신 장소가 나와있다. 그곳은 “요단강 건너쪽, 요한이 처음 침례를 주던 곳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르셨다”고 하셨다. 요한이 처음 침례를 준 곳은 1:28절에 보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로 되어 있다.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라는 지명은 알려져 있지 않기에 논란이 있다. 그곳은 요단강 건너편 북동쪽에 있는 바산일 가능성이 높다. 바산은 오늘날 골란고원이다. 그곳은 필립의 통치 영역이기에 유대교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곳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그곳에서 요한이 침례를 준 것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다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예수님은 그곳에서 공생애를 마치려 하시는 것이다. 이후에는 제자들과 함께 작별하는 장면과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나온다.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거리가 먼 곳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시작하셨다. 그 사역은 대부분 가장 변두리인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하시다가 그 사역의 마지막 부분을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하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요한이 침례를 주던 곳에 돌아와 마무리하신다. 중심지인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철저히 그 사역에서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버린 것이 아니라 저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것을 놓기가 아까워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 다시 외딴 곳으로 오신 것이다.
41절은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로 왔다” 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이고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소외되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이 예수께 와서 한 말은 “요한은 표징은 하나도 행하지 않았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두고 한 말은 모두 참되다” 라는 것이다. 왔다는 말은 과거에 한 번 왔다는 뜻이지만 말했다는 말은 계속해서 말했다는 뜻이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은 참되다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말했다는 것이다.
유대교에서 예언자는 표적으로 확인되었기에 표적을 행하지 않은 하나님의 종은 유대교 자료들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요한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기에 칭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요한은 단지 예수님을 증거했고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정확히 맞다는 것을 사람들은 보았기에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요한이 침례를 주면서 선포한 말이 그대로 성취되었기에 모두가 소름이 끼치도록 놀라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가 직접 행한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그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말씀하게 하신 것이 분명하기에 모두가 소름이 돋도록 놀라고 있는 것이다.
42절은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라며 이 부분을 마친다. 요한에게 몰려와 침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요한이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는 이제 예수님께 몰려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두려워 떨며 예수님을 믿은 것이다. 요한이 침례를 주던 곳은 외딴 곳이기에 예수께 나온 사람들도 유대교에서 소외된 사람들일 것이다. 유대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 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 예수님을 믿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나온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지도자들과 충돌하신 내용과 연결해 본다면 이 부분에서 초점은 참된 믿음과 가짜 믿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잇는가에 있다. 그 기준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가는가 안 따라 가는가 아니면 거부하는가에 있다. 그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배우며 그 말씀들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따라 살다가 그 말씀들이 진리라는 것을 삶의 순간 순간마다 깨달아 알아가는 사람들이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예수님은 알아 보시고 사랑하신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중에 참된 예배자들을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