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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0:31-38

Dawn Word

요한복음 10:31-38

예수님과 하나님의 신비한 연합을 계속해서 배워가라고 하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4. 15.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0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0:31-38 예수께서는 자신을 돌로 치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너희도 하나님 노릇하면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자신을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어찌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하시며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계속해서 배워가야 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자들이 예수님의 양인데 만유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에 아무도 예수님의 양을 빼앗아갈 수 없다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뜻은 같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하신 것 때문에 돌로 치려고 하자 예수께서 아버지의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깨달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원어에서 31절에서 “그들은 다시 돌을 들었다 그를 돌로 칠 목적으로 ” 라고 되어있다. 8:59절에서는 단순히 집어들었다는 말을 썼는데 여기서는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힘겹게 들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앞에서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고 하셔서 자신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암시적으로 말했기에 돌로 치려고 한 것이다. 그 때는 한손으로 집어 들만한 돌을 집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30절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자 이번에는 큰 돌을 두 손으로 무겁게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보다 훨씬 더 큰 돌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돌을 집어 들었다는 말을 쓴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것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거운 것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말을 쓴 것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자 돌로 쳐서 처형시키려는 동작이다.

8:59절에서는 저들을 피해 성전을 빠져나가셨다. 그 때는 아직 돌아가실 때가 되지 않았기에 피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에 집중하시려고 충돌을 피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질문으로 대꾸하며 그들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은 이제 육신의 옷을 벗으실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가까이 왔기에 이제 심각한 충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직접 대면하며 말씀하시는 것이다.

32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라고 하셨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것이다. 중풍병자도 고치셨고 5000명도 먹이셨고 소경을 눈 뜨게도 하셨다. 그 밖에도 요한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저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 어떤 일 때문에 돌로 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33절에서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였소” 라고 대답했다. 저들은 예수께서 선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인정했다. 저들이 돌로 치려고 한 것은 선한 일을 한 것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면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행하신 선한 일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들이다. 그 기적들을 보았다면 최소한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믿었어야 했다.

이 말씀을 듣던 사도 요한의 청취자들은 웃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첫 부분에서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34절에서 예수님도 “너희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시편 82:6절에서 온 말이다. 율법이란 좁게 보면 모세오경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넓게 보면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신 것이다. 시편 82편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거나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을 신들이라고 부른 것이다. 시편 82편은 스스로를 신처럼 높이던 자들을 심판하시며 하신 말씀이다. 이는 그들의 말을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지 신이라고 불렀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은 시편 82:6절을 인용하시면서 35절에서는 가정법으로 말씀하셨는데 새번역은 평서문으로 번역했다. 원어는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이라고 하셨다면”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던 사람들은 통치자들은 하나님 뜻대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을 신들이라고 인정해 주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진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세상을 심판하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다고 하는데 어째서 신성모독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이 말씀에 이어서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 폐한다는 말은 성취된다는 말의 반대이다. 그렇다면 시편 82편에 기록된 내용은 예언이고 반드시 성취된다는 뜻이다. 시편 82편에는 하나님께서 신들이라고 말씀하신 사람들이 공의로 심판을 하지 않는다며 죽을 것이라 나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책임이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서 전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엉터리 재판을 했던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시편 82편 마지막 절은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끝이 난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엉터리 재판을 하던 신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자기들 소유로 삼았는데 사실은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시편 82편의 예언대로 모든 나라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되돌려 놓으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신 것이다.

36절은 이제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중요한 결정을 위해 일어나신 것으로 읽어야 한다. 36절은 “그런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너희는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라고 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성전 봉헌절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본문의 상황은 Antiochus Epiphanes가 성전을 더럽힌 것을 다시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께 바친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훔치고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자들이다. 저들이야 말로 Antiochus Epiphanes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어나셔서 예수님을 새로운 성전으로 거룩하게 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악한 인간들이 하나님이 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37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 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라고 하셨다. 악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말씀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께서 행하신 분명한 일들을 보고 믿으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말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다. 원어에서는 “깨달아” 라는 말과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은 똑 같은 말이다. “깨달아” 라는 말은 가정법 과거이고 “알게 될 것이다”는 가정법 현재라는 것만 다르다. 그 차이는 ‘깨달아’ 라는 말은 배우는 행동을 뜻하는 것이고 “알게 될 것이다” 는 계속해서 배워가는 과정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 알게 되는 내용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 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시기에 그 성전 안에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이는 30절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한 말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응답을 하고 믿기로 작정하면 그 다음에 우리도 참된 성전이 예수님이고 그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기에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번에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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