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35-38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난 사람을 찾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을 믿느냐고 물었고 그는 믿는다고 하며 그 사람이 누구냐고 하자 예수께서 이미 네가 만났고 말하고 있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소경이었던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눈 뜨게 한 일은 창세부터 없었다면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분명하다고 증거하자 그 유대 사람들은 분노하며 죄인으로 정죄하여 유대교 공동체에서 내쫓았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쫓겨난 그 사람을 만나 인자를 믿느냐고 물은 뒤 자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35절은 예수께서 들으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들이 그를 내쫓았다는 말을 들으신 것이다. 그들이란 앞에서 나온 그 유대 사람들이고 바리새파 사람들이다. 그래서 새번역은 바리새파 사람들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소경이었던 사람을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 사람을 찾으신 것이다.만나서라고 번역된 말은 찾아다니다가 발견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그 사람을 찾아다니신 것이지 어쩌다 우연히 만났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하신 말씀은 네가 인자를 믿느냐는 것이다. 새번역 아래 주석을 보면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라고 되어 있다. 5세기 이후 대다수의 사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2세기 사본인 P66과 3세기 사본인 P75를 비롯하여 4세기 대문자 사본 둘은 “사람의 아들을”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본들의 증거는 분명히 처음에 “사람의 아들”로 기록된 것을 나중에 “하나님의 아들”로 바꾼 것이다.
초기의 신학자들인 성경 필사자들은 “사람의 아들” 이라는 말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바꾸어 기록한 것이다. 만약 본래부터 의미가 잘 통하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기록되었다면 그것을 의미가 잘 안통하는 “사람의 아들” 이라는 말로 바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사람의 아들” 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믿느냐는 뜻이다.
소경이었던 사람은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9:33절에 보면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만 믿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찾다가 발견하신 뒤에 그 사람에게 너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라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막연한 믿음을 한층 더 깊은 곳으로 이끌고 가시려는 질문을 하신 것이다.
그러자 36절에서 그 사람은 대답하며 말하기를 “그 분이 누구십니까? 내가 그 분을 믿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그 분을 믿을 것이라는 말은 그 분의 안을 향하여 믿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 안을 향하여” 라는 말은 그릇에 물이나 곡식을 붓거나 사람의 안으로 귀신이 들어간다고 할 때 쓰는 말로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서 믿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안에 거하는 것이 그 목표이고 믿음이란 그 분 안에 거하는 과정이 된다.
마태 마가 누가는 “그 안을 향하여” 라는 표현을 예수께 침을 뱉거나 음식이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귀신이 사람 안으로 들어갈 때 썼다. 요한만이 “그 안을 향하여” 라는 말을 믿는다는 말과 함께 열 여섯번이나 사용했다. 요한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육신을 입고 오신 그 분 안을 향하여 믿어서 그 분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7절에서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이미 그를 보았다” 라고 하셨다. 보았다는 말은 네가 믿겠다고 한 그 사람을 이미 완전히 보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소경되었던 사람의 모습은 6:30절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 중 일부 사람들과 대조가 된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줘서 믿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6:3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들 역시 기적을 체험했고 예수님도 직접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않았다.
9:36-37절에서도 믿는다는 말과 본다는 말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면 믿어야 하는데 그들은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경이었던 자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겠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이미 보았고 함께 말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기적들을 체험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소경이었던 사람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겠다고 결심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예수님 안에 거하며 머리되신 예수님과 한 몸인 교회를 이루고 믿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