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6-17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의 대답을 듣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가 안식일 법을 어겼으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편과 기적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나뉘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누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묻자 그는 예언자라고 대답했다.
이전 말씀에서 이웃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의 말을 듣고 안식을 법을 이중으로 어긴 것 때문에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끌고갔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에 초점을 두고 질문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평가가 바리새파 사람들 사이에서 나뉘게 되자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가 예언자라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16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15절과 연결이 된다. 예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대로 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이 말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둘로 나뉘게 되었다. 첫번째 그룹은 말하기를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식일 법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세한 조항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자신들이 만든 안식일 법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세부 규정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그룹은 말하기를 어떻게 죄인인 사람이 이러한 기적을 행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들은 행한 기적을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이들이 철저히 따르던 모세오경인 민수기 13:1-5절을 보면 거짓 예언자들이 표징과 기적을 행하며 다른 신을 섬기자 해도 따라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기적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잘못된 믿음이다. 마태복음 7:21--23절과 데살로니가후서 2:9절을 보아도 사탄의 사람들도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들 두 그룹 모두 다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기 이들 안에서 의견이 갈라졌다고 했는데 원어는 둘로 찢어졌다는 뜻이다.
자기들끼리 이렇게 갈라지자 17절에서 그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너는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느냐? 왜냐하면 그가 네 눈을 열었으니 말이다” 라고 다시 말했다. 10절에서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당신 눈이 열리게 되었는지 물었고 소경이었던 자는 이미 대답했다. 그런데 15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또 다시 물었다고 했기에 앞에서 물었던 이웃들도 바리새파일 것이다. 그 질문은 어떻게 다시 보게 되었느냐로 바뀌었다. 17절에서 또 다시 질문한 것은 이제 “너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것이다. 그가 네 눈을 열어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있다고 덧붙여 설명한 것이다. 자기들끼리 논쟁이 생기자 이 사람의 의견을 들어 자신들의 논쟁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는 대답하기를 예언자라고 했다. 그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주신 능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그 예언자라고 하지 않고 한 예언자라고 대답한 것이다. 구약에서 예언자는 기적을 행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아직 온전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신 것은 분명히 믿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예언자라고 대답한 것이다. 11절에서 예수라는 사람이라는 대답에서 한 것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 사람의 믿음이 점점 더 진보하는 것을 바리새파 사람들과의 논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한이 이 부분에서 증거하는 초점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나 기적을 보고 믿으려는 사람들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해 주신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 역시 아직 완전한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믿음은 이 소경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을 체험함으로 시작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온전한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