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3- 15 이웃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의 말을 듣고 안식을 법을 이중으로 어긴 것 때문에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끌고갔고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에 초점을 두고 질문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행한 일과 말한 것을 전하며 그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가 어디있는지 물었고 이 사람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웃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가서 심문을 받게 하는 장면이다.
13절에서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은 한 때 소경이었던 사람을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이끌고 갔다고 했다. 그들은 분명히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에 관해 논쟁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분명하게 자리잡은 사람들이기에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에 치료했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데리고 간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산헤드린 공회나 대제사장들에게 대려가지 않고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려갔을까? 그들이 전에 소경이었던 자를 데려간 것은 재판을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언을 듣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공관복음의 관점에서 요한복음을 본 것이라며 요한복음에는 사두개파 라는 말이 안나온다며 요한 당시바리새파 라는 말은 예수님을 대적하던 그룹 전체를 포함하는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중요한 것은 바리새파 라는 말이 사두개파도 포함하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웃들이 안식일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바리새파에게 데려간 것이다. 14절에서도 예수께서 진흙을 만들어 눈을 뜨게 한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고 했다. 이웃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치유했을 뿐 아니라 진흙을 반죽해서 안식일법을 이중으로 어겼기 때문에 데리고 간 것이다.
1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14절과 연결이 된다. 이웃들이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 법을 두가지 어긴 것에 대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으러 왔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그가 진흙을 자신의 눈 표면에 발라주었고 눈을 씻으니 보게 되었다고 대답을 했다.
이웃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모두 다 이 불쌍한 사람이 눈을 뜨게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안식일 법을 어겼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도 성경 말씀에 비추어 옳은지 아닌지 이단인지 삼단인지만 따지고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도 역시 똑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보다 먼저 말씀에 담긴 하나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