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56-59 예수께서는 아브라함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육신으로 온 것을 보고 기뻐했다고 하셨고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신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자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숨겨서 성전을 빠져 나가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 스스로 자신을 영광되게 조작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자신을 영광되게 높여주신다며 자신의 아버지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이라고 하셨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에수님 자신은 그분을 완전히 보아서 알고 있고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간직하고 순종한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아브라함도 나의 날을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고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수께서 존재하셨다고 하자 사람들은 돌로 치려고 하는 장면이다.
56절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기뻐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기뻐한다는 말은 최고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 입이 찢어질 듯 기뻐한다는 뜻이다. 시편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이다. 히브리서 11: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자로되 독생자를 드렸다는 말이 나온다. 창세기 15:5-6절에서 하나님께서 별처럼 많은 자손을 준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믿었다는 말이 나온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랍비들의 문서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관해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다고 다고 해석한다. 예수께서도 그러한 전통을 알고 계시면서 말씀하셨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사야 41:8절과 야고보서 2: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한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메시야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날을 보리라 기대하고 입이 찢어지도록 기뻐하였고 또 보고 기뻐하였다고 했다. 대부분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 실현될 것을 믿고 기뻐하였다는 뜻은 아니라고 본다. 보고 기뻐하였다는 표현이 다른 세상에 있는아브라함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아브랏함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나실 것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고 또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도 아브라함은 보고 기뻐했다는 뜻이다.
57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56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반응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따지고 있다. 오십이란 한 희년을 가리키고 두 희년은 100년을 가리킨다며 정확한 나이를 세는 것이 아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50년을 살면 하나의 희년을 살았기에 많이 산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30정도 되신 예수께서 50 조금 못되어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 함께 있었다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그러자 58절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공식으로 대답하신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고 하셨다. 내가 있다는 말은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창세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자 59절에서 저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했다. 돌을 들어 치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했기에 돌로 쳐서 죽이려 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제 분명히 이해했다. 예수께서 아브라함 시대에 육신으로 함께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 이전부터 계시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로 치려고 했던 것이다.
새번역은 예수께서 몸을 피해서 성전 바깥으로 나가셨다고 번역했다. 개역은 숨어서 나가셨다고 번역했다. 원어는 예수께서 숨었다 그리고 성전 밖으로 나갔다고 되어 있다. 이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암시한다. 원문은 자신을 감추었다는 뜻이기에 새번역처럼 몸을 피해서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어떻게 자신을 감추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모독 죄를 범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수많은 유대인들 틈에서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한은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 계셨던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마귀의 자녀분들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