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9-11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하신 예수님을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고 예수께서는 여인을 정죄하지 않겠다 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고발하려고 진퇴양난에 빠뜨린 뒤 어떻게 할 것인지 다그쳐 묻자 예수께서는 그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신 뒤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고는 다시 땅바닥에 글씨를 쓰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자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9절은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NIV나 새번역처럼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그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로 번역했다. 둘 다 가능하지만 신약성경에서는 “들었을 때” 라는 의미로 쓰인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예수님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먼저.
왜 나이가 많은 사람들 먼저 떠났는가? 어떤 이는 어떤 사회에서는 나이가 존경받는 지위를 갖는 것이라며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 먼저 떠나갔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존경 받는 지위에 손상이 갈까 염려하여 먼저 떠난 것이 된다. 그러나 다수는 양심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지은 경험이 더 많기에 양심에 찔리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만 혼자 남았고 그 여인은 가운데에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예수만 혼자 남았다는 것은 여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를 망신 주려고 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다 떠났다는 뜻이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자리에는 제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구경꾼들도 물론 그 자리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는 고소한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지 그 자리에 단 둘이만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개역은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했다. 이는 8세기 이후 대문자 사본 두개와 많은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에는 이 말이 있기 때문이다. 개역은 King James를 따라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더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에는 이 말이 없기에 현재 원어 성경에는 이 말이 없다. 새번역은 원어 성경을 따라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라고 번역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아무도 없느냐?” 라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도 여인에게 “너를 고소한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라고 물으셨기에 분명히 여인을 데리고 와서 고소하던 자들이 다 가버렸다는 뜻이다. 예수께 수치심을 주려고 왔던 자들은 이제 수치심을 안고 떠나간 것이다.
11절에서 여인이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며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생각했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높여 부르는 경칭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도 정죄하지 않겠다며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니 말은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그 이러한 죄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셨기에 죄를 눈감아 주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는 분명히 알고 계시고 죄 짓지 말라 하시면서도 죄를 지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남을 정죄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가슴아파 하고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