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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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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7:21-24

하나님 말씀의 참뜻을 따라 심판하라

2024. 2. 6.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7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7:21-24 예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안식일 법을 어기는 일에는 분노를 표시하면서 하나님의 참된 뜻을 행하지는 않는다며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 준수에만 신경쓰지 말고 공의의 심판으로 심판하라고 책망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생각대로 가르치는 사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르치는 예수님 자신을 비교하며 예수님 자신에게는 하나님의 진실함만이 있고 불의는 없다며 왜 죽이려고 하는지 물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도 할례를 주는 것 말씀하시며 예수께서도 안식일에 할례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데 어째서 분개하느냐고 대답하시는 내용이다.

20절에서는 무리들이 끼어들어 예수께 귀신들렸다고 모욕하며 누가 죽이려고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21절에서 예수께서는 무리들의 질문은 그냥 무시하셨다. 대신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동기인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답변을 하셨다. 그 답변은 예수께서 한가지 일을 행하셨는데 모두가 놀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일이란 5:1-18절에 나오는 안식일에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주석가들이 예외없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

놀라고 있다는 말은 앞에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나 아주 특별한 일에 놀라는 경우에 쓰였다. 7:15절에서도 글을 배우지 않았는데 놀라운 가르침을 주시는 것에 놀랐다고 할 때 썼다. 그러나 21절에서 놀라고 있다는 말은 기적 때문에 놀랐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법을 담대히 어긴 것 때문에 놀랐다는 뜻이다. 안식일 법을 어기면 심각한 벌을 받기에 아무도 감히 어기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22절은 원어에서 “이것 때문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개역이나 새번역은 NLT와 같이 “이것 때문에” 라는 말을 빼놓고 번역했다. “이것 때문에” 라는 말이 22절과 어울리지 않기에 ESV는 “you all marvel at it” 이라고 21절 끝에 붙여 번역했다. 그렇기 때문에 21절 끝에 붙여야 맞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 때문에” 라는 말이 22절과 어울리지 않기에 4세기 사본인 Codex Siniticus 필사자는 이 말을 삭제했고 후대 필사자가 나중에 여백에 작은 글씨로 다시 적어 넣었다. 그러나 4-5세기 대문자 사본들 중에는 “이것 때문에” 다음에 여백을 넣은 사본이 없다. 수천개의 사본 중 딱 하나의 사본이 이 말을 빼놓고 기록했을 뿐이다. 사본의 증거로는 이 말이 21절 끝부분에 붙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요한은 “이것 때문에” 라는 표현을 15번 사용하면서 14번 모두 다 다음에 나오는 말과 연결해서 사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22절에서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라는 말이 완전한 회복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완전한 회복 때문에 모세는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준 할례는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 완전하게 회복시키신다는 언약의 표시일 뿐이다. 반대로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신 것은 완전한 회복의 한 모형이 될 수 있다.

요한은 이 할례가 모세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해설을 덧붙였다. 할례는 아브라함부터 행했고 나중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준다고 하셨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도 할례를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할례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신다는 언약의 표시이다. 그러나 실제로 온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단지 회복의 언약을 표시일 뿐이다. 그런데도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 일을 안식일에 해도 좋다고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23절은 만일 한 사람이 안식일에 할례를 받는다면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한다면 너희는 어째서 내게 화를 내느냐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안식일 법보다 위에 두고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안식을 법도 어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한 사람 전체를 온전하게 했는데 어째서 내게 화를 내느냐고 하신 것이다.

24절에서 예수께서는 겉모양에 따라 심판하지 말고 공의의 심판으로 심판하라고 하셨다. 겉모양이란 율법의 겉모양만 지키며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을 아주 철저히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겉모양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본 뜻인 공의의 심판을 따라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형을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사람들 보기에 거룩함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의 거룩함으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눈은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의식하여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이웃을 돕는 등의 종교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따라 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형식보다는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참된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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