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2-13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위에 억눌린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드러내놓고 말도 못한 채 자기들끼리 불평하고 있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형제들을 먼저 올라가도록 하신 다음에 자신은 밝히 러내지 않고 감추인 채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기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를 찾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여러가지 평이 있었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이 무서워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12절은 11절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찾는 모습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명절에 모인 무리들은 갈릴리에서 온 유대인들이거나 유대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이거나 아니면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따라서 11절에서 예수를 죽이려고 찾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예수를 죽이겠다고 서슬이 시퍼런 눈으로 노려보며 어디있는지 찾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예수에 관해 많은 불평들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개역은 수군거림이 많았다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말들이 많았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 말은 앞에서 분명히 작은 소리로 불평을 한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러나 출애굽기에서 이 말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원망한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불평을 수군거릴 때 쓴 말이다.
그러나 예수에 대해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사기꾼이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예수님을 통해 치료를 받았거나 직접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평도 있고 나쁜 평도 있기에 불평이라는 말로 번역하지 않고 수군거림이나 말들이 많았다고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무리들이 불평한다는 말이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불평을 하는 것은 예수께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이겠다고 찾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두려워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고 그 권위에 억눌린 채 마음 놓고 말도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담고 자기들끼리 말하는 모습이다. Lincoln도 여기서 불평한다는 말은 불평이 아니라 억눌린 토론을 가리킨다고 했다(Lincoln, 245). 유대교 지도자들이 두려워 드러내놓고 말을 못하고 수군거리며 불평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무리들이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드러내놓고 말도 못하는 이유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결정을 했기 때이다. 그러한 내용이 9:22절에 나오고 12:42절과 16:2절에도 같은 말이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뜻이다. 유대교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난다는 뜻은 마치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들 중에는 상당수가 예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13절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두려워 말도 못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에 관해 드러내놓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유대사람들 때문이다. 여기서 유대사람들이란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사법권은 없었지만 사람들을 유대교에서 쫓아낼 권한도 있고 하나님을 모독한 자들은 돌로 쳐 죽이라고 명할 권한도 갖고 있었다.
이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찾고 있는 이유는 7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께서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저들이 하는 일이 악하다고 하신 것 뿐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회개했어야 옳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음성에는 귀를 막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강력한 권한이나 지도력을 갖게 되면 그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그 권위에 억눌려 아무도 바른 말을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말씀도 자신에게 맞는 말씀만 받아들이기에 말씀에 찔림을 받지도 않게 된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상관없이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면 똑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