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1-2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을 피하시고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집중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열둘을 택하셨지만 그 중 하나는 마귀라고 하셨는데 요한은 이 말씀이 유다를 가리킨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뒤에 예수께서는 유대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였기에 갈릴리를 두루 다니셨다는 내용이다.
7:1절은 “그 뒤에” 라는 말로 앞부분과 상당한 시간 치이가 있음을 알린다. 앞에 나온 오병이어의 기적과 빵으로 비유한 가르침과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제 새로운 내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안에서 두루 다니셨다는 것이다. 개역은 단순히 다닌다는 말로 번역했는데 원어는 둘레라는 말과 발로 밟는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목적을 가지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여기저기 왔다갔다 할 때 쓰는 말이다. 5:8절에서 중풍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할 때도 쓴 말인데 한번 여기저기 걸으며 주변을 돌아다녀 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같은 단어가 66절에서도 나왔다는 것이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고 더 이상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할 때도 두루 다닌다는 말이 쓰였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갈릴리 안에서 두루 다녔다는 말은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고 남은 제자들과 그렇게 두루 다니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집중하셨던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왜 갈릴리 안에서만 여기저기 돌아다니셨는지를 설명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유대지역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지역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은 이유가 또 이어서 설명이 된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계속해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죽이려고 한다는 말은 죽일 기회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이란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을 뜻한다.
대부분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는 이유를 5:18절을 근거로 든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 가에 있던 중풍병자를 치료하신 사건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안식일에 일한다고 예수님을 공격하자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로 죽어 마땅한 죄였다.
갈릴리도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유대에 있는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계속 마음을 먹었다면 갈릴리에 사람을 보내 잡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유다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다며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는 지역이었지만 유다는 로마 총독이 직접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마치 다른 나라처럼 분리되어 있었기에 한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머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처럼 범인 인도협정 같은 것이 있던 때도 아니었기에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절은 그런데 유대사람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졌다고 했다. 초막절은 본래 수확한 것을 두고 벌이는 축제였고 날짜가 고정된 것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레위기의 법에서 일곱째달로 고정이 된 것이다. 신명기 16:13절을 보면 여기서 거둔 소출은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을 거둘 때인 4-6월이 아니라 포도와 올리브를 거둘 때인 9월쯤에 해당한다. 포도는 수확하면 바로 짜야만 했기에 포도를 포도즙 틀에 두고 발로 밟아 짜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때이다.
따라서 이러한 초막절은 포도와 올리브를 수확한 후에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서 과거 광야에서 있었던 때를 기억하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 이 세가지 중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초막절이다. 아마도 포도주를 마시고 광야에 나가 천막을 치고 생활하는 것 때문에 특별히 인기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물을 붓는 것과 촛불을 밝히는 의식을 행했는데 이것이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배경을 구성한다. 7-8장에서 생수의 강과 세상의 빛이라는 비유가 바로 이러한 초막절에 행하던 의식들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7:1-2절은 7-8절의 도입부 구실을 한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사역하신 이유를 요한은 예루살렘 지도자들과의 충돌 때문으로 설명한 것이다. 특별히 오늘 말씀의 핵심이 되는 단어는 “두루 다니셨다” 라는 단어이다. 수많은 제자들은 떠나가고 더 이상 함께 두루 다니지 않았지만 소수의 남은 제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과 함께 두루 다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만약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지역을 다니면서 사역하셨다면 그 사역은 훨씬 더 빨리 끝이 났을 것이고 제자들을 양육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충돌은 한적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제자들을 양육하는데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의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면 그것은 오히려 말씀으로 훈련하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러한 기간은 마치 수도원에 들어간 것처럼 외부와 단절된 채 우리의 영성 개발에 힘쓸 수 있는 축복된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