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28-29 무리들은 어떤 하나님의 일들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보내신 이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 단 하나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무리들이 예수를 찾아와 언제 오셨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대답 대신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시며 영원한 양식이 자신에게 있음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명해 주셨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무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되느냐 묻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답하시는 내용이다.
28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27절에서 영원히 남아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며 인자가 그 양식을 주겠다고 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무리들은 영원토록 남아있을 양식을 율법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저희가 예수께 묻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이는 어떤 율법들을 주시겠냐는 질문이다.
원어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가 일하게 되는 것인지” 라는 뜻이다. 일을 일한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표현방식이다. 그것을 그리스어로 그대로 번역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말하는 일들이란 하나님의 율법들을 준수하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9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일들이다”가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라는 것이다. 모든 영어번역들은 28절은 하나님의 일들로 번역하고 29절은 하나님의 일로 구별해서 번역했다. 그러나 한글 번역은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구별없이 “하나님의 일”로 번역했기에 예수님의 강조점을 놓치기 쉽다. 영생에 이르는 양식은 수많은 율법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이라는 명사는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대신에 믿는다는 동사는 가장 많이 사용했다. 특별히 요한은 믿는다는 말 다음에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전치사(εἰς)를 많이 사용했다. 공관복음에서는 마태복음 18:6절 한곳에서만 믿는다는 말과 이 전치사가 함께 나온다. 그러나 요한은 이 전치사를 믿는다는 동사와 정말 많이 사용했다.
바울은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표면 위를 나타내는 전치사(ἐπί)를 주로 쓴 것과는 대조가 된다. 바울은 믿는다는 것은 믿고 그분께 기대는 그림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10:10절에서 믿어서 의에 이른다고 할 때는 바울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방향성을 나타내는 전치사를 믿는다는 동사와 함께 사용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의 의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예수님 안으로 믿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하나님 밖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 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 것과도 같은 그림이다.
요한이 믿음이라는 명사를 쓰지 않고 대신에 믿는다는 동사를 쓴 것은 요한이 믿는다는 말을 순종한다는 말과 거의 동일시한 것이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집을 나간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와 아버지의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버지께 순종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어 그 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무리들은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개발한 수많은 율법들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율법들을 만들어 낸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자로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율법들로 얽어 매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을 벗어나 율법이라는 굴레 안에 매여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의 품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율법들을 지켜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