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25-27 무리들이 예수를 찾아와 언제 오셨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대답 대신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예수께서 주시는 영원한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시며 영원한 양식이 자신에게 있음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증명해 주셨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배는 즉시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를 찾아 왕으로 삼으려던 무리들은 전날 제자들만 떠난 것을 알고 갈릴리 동쪽에서 예수를 찾다가 찾지 못하자 가버나움으로 건너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들이 예수께 언제 왔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토록 남아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시는 장면이다.
25절은 예수님을 찾던 무리들이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말하는 내용이다. 바다 건너편이란 갈릴리 바다 서쪽이다. 무리들은 갈릴리 바다 동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왔다. 그들은 예수께 질문하기를 “랍비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라고 했다. 이들의 질문은 22절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22절에서 그들은 배가 한 척만 있었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언제 이곳에 오셨느냐고 질문한 것이다.
이 구절이 예수께서 건너신 기적적인 속성을 강조할지도 모른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질문은 어떻게 바다를 건넜는지가 아니라 언제 여기에 오셨는지이다. 왜냐하면 배를 타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에 어떻게 자신들보다 빨리 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무리들은 예수께서 밤새도록 갈릴리 북쪽 해안선을 따라서 걸어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기에 어떻게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물은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옳다.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배를 타고 가로질러 온 자신들보다 빠를 수는 없기에 놀라서 한 질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물 위를 걸어 갈릴리 바다를 건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은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제자들에게만 주신 개인적인 표적이기 때문이다. 26절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며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사실 그들의 질문은 무시하고 그들이 예수님 자신을 찾는 이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공식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예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표적이란 앞에서 나온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무리들은 14절에서 예수님을 향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 즉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 했다. 만약 무리들이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라고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믿고 따랐어야 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단지 자신들을 배불리 먹여줄 수 있고 잘살게 해 줄 능력이 있는 왕으로 생각하고 찾으러 다닌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신 것이다. 무리들은 빵에 눈이 가려서 예수께서 보여주신 표적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들의 문제점을 분명히 파악하셨기에 27절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남아있을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 썩을 양식이란 출애굽기 16:20절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만나를 다음 날까지 보관해 두었는데 벌레가 생겨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잠깐만 우리에게 남아있을 음식과 비교되는 것은 영생에 들어갈 때까지 남아있을 영원한 양식이다. 영생에 들어갈 때까지 남아있을 것은 4장에서 생수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에게서 솟아나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말씀하셨다. 이는 뒤에 나오는 48-59절에서 예수께서 친히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다수의 주석가들도 예수께서 앞으로 주실 것은 51절과 53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육신으로 설명한다.
일한다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평생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영생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있을 양식은 일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주신다고 하셨다. 뒤에서 예수님 자신의 육신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빵이라고 하셨기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해 주신다는 뜻이다.
새번역은 이어서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원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어주셨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정하셔서 도장을 찍어주셨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다수의 주석가들은 인치셨다는 말이 바울서신들에서(고후 1:22; 엡 1:13, 4:30) 침례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과 요한복음 1:32절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한 것을 근거로 예수님의 침례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같은 단어가 다른 곳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찾는 것 보다는 전후 문맥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5:36-37에서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며 예수께서 하고 있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요한이 침례를 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린 것이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어 주신 것으로 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는데 예수께서 하고 계시는 일이 아버지의 증언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문맥에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빵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계시기에 바로 앞에서 나온 오병이어의 기적이 하나님의 인치심이다. 물론 그 밖의 다른 기적들도 하나님의 인치심이다. 그러나 도장을 찍어주셨다는 말의 의미는 먼저 전후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같은 단어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전후 문맥보다 앞설 수는 없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맞다고 모든 무리들 앞에서 도장을 찍어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이 탄 배로 오신 기적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맞다고 제자들에게만 도장을 찍어 확인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항상 제일 먼저 전후 문맥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맞다고 확인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믿고 따라 살아야한다.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우리가 영생에 이르기까지 남아있을 영원한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