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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6:16-21

Dawn Word

요한복음 6:16-21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4. 1. 2.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6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6:16-21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은 바다 중간에서 큰 풍랑을 만났다. 그 때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기적을 본 무리들이 자신을 모세와 같은 예언자라고 말하며 왕으로 삼으려 하자 그 무리들에서 탈출하여 또다시 홀로 산으로 가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장면이다.

16절은 “그러나 날이 저물었을 때” 라는 말로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날임을 나타내는 말로 시작한다. 저물었을 때라는 말은 저녁 때 라는 뜻인데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은 때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갔다고 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600 피트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내려갔다고 한 것이다. 갈릴리는 사실 육지에 있는 호수이지만 히브리어로는 똑같이 바다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왜 제자들은 어두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을까? 마가복음 6:4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먼저 가라고 보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가려고 기다리다가 오시지 않았기에 저물 때까지 있었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 가자 바다로 내려가 배를 타고 예수님 오시길 기다렸을 것이다.

17절은 그들이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다고 했다. 원어는 계속해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는 뜻이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고 했다. 16절에서는 그래서 빛이 조금 있었는데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상황이다. 완전히 어두워지자 배를 밀어 물에 띄우고 이제 가버나움을 향해 가는 중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이러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상황이 단순히 시간적 배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해석하거나 밤의 어두움은 예수님의 부재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요한이 어두움이라는 단어를 제자들의 불신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요한의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 것이다. 문맥은 이 부분이 제자들의 시각에서 말해지고 있기에 어두울 때까지 그들은 예수를 기다렸다는 의미일 뿐이다. 어두움을 상징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요한이 사용한 빛과 어두움의 상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다. 17절 끝부분을 보면 예수는 아직도 그들에게 오시지 않았다고 했기에 여기서 어두움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분명히 요한은 어두움과 빛을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한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요한이 어두움이라는 단어를 상징으로 사용할 때는 항상 빛과 어두움을 함께 대조해서 썼다(요 1:5, 8:17, 12:35, 12:46; 요일 1:5, 2:8,9, 11). 요한이 빛과 어두움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지 않은 곳은 이곳과 요한복음 20:1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를 나타낼 때 썼다. 따라서 요한이 실제 어두운 시각을 묘사한 것인지 빛과 어두움을 상징으로 사용한 것인지 구분해서 해석해야 한다.

18절은 그런데 큰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바다의 파도가 거칠어졌다고 했다. 여기서 거칠어졌다거나 사나워졌다고 번역한 말은 마가복음 4:39절이나 누가복음 8:24절에서는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고 할 때 쓴 말이다.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후서는 영적인 잠에서 깨운다는 뜻으로 썼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은 잠자고 있던 바다를 큰 바람이 깨웠기에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고 쓴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갈릴리 바다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이기에 큰 파도가 일어날 수 없다며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협곡에 위치해 있다. 북쪽의 헬몬산 쪽에서 찬 바람이 내려오면 산과 산 사이에서 바람이 휘몰아쳐서 큰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날도 갈릴리 호수에서는 엔진이 달린 보트들도 바람 때문에 항구에 머물러 있으라는 경고를 주기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엔진이 달린 큰 배들도 오늘날 경고를 받는데 하물며 돛과 노에 의해 움직이는 작은 보트는 말할 것도 없다.

19절은 그러므로 제자들이 십여 리쯤 완전히 갔을 때 라는 말로 시작한다. 십여 리쯤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25에서 30 스타디아 쯤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스타디움이라는 단어가 스타디아라는 말에서 온 말이다. 고대 올림픽 운동장 크기의 25-30배쯤 되는 거리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3-4마일(4.8-6.4km)로 번역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당히 멀리 한 것이다. 갈릴리 바다의 폭이 8마일 정도이기에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는 뜻이다.

그 때 예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셔서 배에 가까지 오신 것을 제자들이 구경을 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놀라운 광경을 구경할 때 쓰는 말이다. 영어의 극장이라는 말의 어원이 이 단어이다. 예수께서 배에 가까이 오기까지 걸어오시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3-4마일 거리의 바다 위를 걸어오셨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창세기 1:2절에서도 하나님은 수면 위를 운행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두려워한 것이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취하던 행동이다.

20절에서 그러자 예수께서 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말씀은 “나다” 라는 말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나는 존재하는 나다” 라는 뜻인데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출애굽기 3:14절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라는 구절에서도 나온다. 이어서 두려워 말라고 하시니 것도 역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기적이다. 이번에 물 위를 걸어오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두려워 말라” 라고 하신 것도 역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동등하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증거되고 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요한의 증언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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