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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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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6:8-1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3. 12. 29.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6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6:8-11 안드레는 보리빵 다섯개와 작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무리들을 풀밭에 눕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무리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나누어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큰 무리가 오는 것을 구경하신 예수님은 빌립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는지 시험하고자 그 동네를 잘 알던 빌립에게 어디에 가서 빵을 사서 이들을 먹일 수 있는지 물으셨을 때 빌립은 인간적은 계산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져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내용이다.

8절은 원문에서 “그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말하고 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개역과 새번역 모두 “그의”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빼고 번역했지만 영어 번역들은 모두 “His disciples” 로 원문 그대로 번역했다. 그러나 한글 번역이나 영어 번역들 모두 “말하였다” 라는 말은 원문과 달리 과거로 번역했다. 그러나 원문은 “말하고 있다” 라는 현재형이다. 복음서는 말로 들려주던 것이기에 마치 실제 현장에서 중계방송을 하듯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께 말하고 있다” 라고 기록한 것이다.

“제자 가운데” 라는 말을 원문 그대로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의 제자들로부터 나온” 이라는 뜻이다. 마가복음 13:1 “그의 제자들 중” 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그의 제자들로부터 나온” 이라는 표현은 요한만이 아홉 번이나 사용한 말이다. “그의 제자 중 하나” 라고 하기도 하고 “그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라고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의 제자 중” 이라는 표현까지 합하면 요한 만이 열 번을 사용했다. 요한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한 몸으로 여겼기에 이런 특별한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요한복음이 가장 늦게 기록되었기에 다른 복음서들이 기록되던 때보다 제자들의 공동체의 결속이 더 강력했을지도 모른다.

그 제자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이다. 1:40절을 보면 그는 침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요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사람이다. 안드레는 1:41절에서 자기 형제인 베드로에게 가서 예수가 메시야라고 증거했던 사람이다. 마가복음 13:3절을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로 표현되고 있다. 요한복음 12:20-22절을 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청하자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자 안드레는 빌립을 데리고 예수께서 가서 이 말을 전했다. 안드레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

빌립의 대답이 예수님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을 금방 눈치챈 안드레는 9절에서 여기 한 소년이 있는데 그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른복음서들에서는 단순히 빵이라고 했는데 요한은 보리빵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보리빵은 밀로 된 빵보다 값이 쌌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년도 가난한 집의 아이이다.

물고기라는 말도 다른 복음서에서는 크기도 말하지 않고 단지 물고기라는 일반적인 말을 썼지만 요한은 요리된 작은 물고기를 뜻하는 단어를 썼다. Thayer’s Greek Lexicon에 따르면 간을 하거나 양념을 해서 말린 물고기이다. 그것도 작은 것을 뜻하는 표현이기에 말린 물고기 다섯 마리인 것이다. 요한은 여기서 그물을 던져 잡아 올린 물고기가 아닌 먹을 수 있도록 다듬어 말린 생선을 따로 구별해서 말한 것이다. 아마도 소금에 절여 말린 멸치보다 조금 큰 생선일 것이다. 보리 빵을 먹을 때 반찬으로 먹을 수 있도록 짭짤한 것일 것이다. 보리 빵과 마찬가지로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매우 보잘 것이 없는 먹을거리이다.

안드레는 이렇게 값싸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안드레도 기적을 기대하고 이것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들 가운데서 먹을 것이 있는지 찾다가 발견한 것이 이것 뿐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두 먹을 것을 가지고 왔는데 내놓지 않고 있다가 아이가 내놓는 것을 보고 내 놓아서 먹고도 남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안드레는 분명히 무리들 사이를 다니면서 찾다가 찾아낸 것이 겨우 이것 뿐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요한은 이를 통해 예수님의 기적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10절에서 예수께서 사람들을 앉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원어는 앉게하라는 말이 아니라 눕게하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풀이 많았다고 했다. 이는 4절에서 유월절이 가까웠다고 했기에 3-4월이다. 이스라엘은 겨울과 봄에 비가 오기에 봄에는 풀이 잘 자라다가 여름이 되면 다 말라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 풀이 많았다는 것은 그 때가 언제였는지를 기억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사람들이 누웠는데 그 숫자가 남자만 오천명쯤 되었다고 했다.

11절에서 예수께서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누워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했다. 물고기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나누어주셨다고 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많이 주셨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이미 기적은 일어난 것이다. 무리들이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만큼 주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사를 드렸다는 말을 주의 만찬을 뜻하는 특별한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식사 전에 감사를 드리던 유대인들의 식사 절차를 나타내는 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1:41절에서는 같은 말이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기 전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장면에서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 단어만 가지고 주의 만찬과 연관시키는 것은 요한복음 전체의 문맥상 맞지 않고 시대착오적 해석이다.

빌립은 이성적인 사람이라 머리로 계산을 했고 안드레는 몸으로 무리들 사이를 다니며 먹을 것을 가져왔는지 확인을 했다. 하지만 안드레도 역시 칭찬 받을만한 믿음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가장 값이 싼 빵과 소금에 절여 말린 작은 물고기 뿐이었다며 아무 쓸모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두 제자 모두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가난한 아이의 보잘것 없는 도시락으로 남자만 오천 명인 무리들에게 마음껏 먹도록 나누어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출애굽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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