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5-7 큰 무리가 오는 것을 구경하신 예수님은 빌립이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있는지 시험하고자 그 동네를 잘 알던 빌립에게 어디에 가서 빵을 사서 이들을 먹일 수 있는지 물으셨을 때 빌립은 인간적은 계산으로 불가능하다고 대답을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건너편 외딴 곳의 산에 앉으시고 큰 무리들이 따라와서 예수님 앞에 앉았는데 그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큰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먹일 방법을 묻자 빌립은 이 백 데나리온도 부족하다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앞부분과 연결된다.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는데 그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므로 라는 뜻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눈을 들어 보시고” 라는 말이 이어진다. 눈을 들어 본다는 말은 아래를 보고 있다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고 구경을 한다는 뜻이다. 같은 말이 4:35절에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는 말에서도 쓰였다.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오는 장면을 보고 하신 말씀이다. 큰 구경거리가 생겼을 때 쓰는 말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구경하시는 대상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향해 오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빌립에게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어디에 가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왜 여러 제자들 중에 빌립에게 물으셨을까? 다수의 주석가들은 1:44절에서 빌립이 벳세다 출신이라고 했고 예수께서 계신 곳은 빌립의 출신 지역과 가까운 곳이기에 빌립에게 물은 것이라고 설명한다(Bernard, 176; Blum, 293; Bruner, 261; Carson, 269; Gangel, 118; Kruse, 162; Milne, 103). 빌립이 그 동네를 잘 알고 있으니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빵을 어디에 가서 살 수 있는지 물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 인근 지역에서 빵을 살 수 있는대로 다 긁어 모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6절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를 시험하고자 함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디에서 많은 빵을 살 수 있는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빌립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험하시려는 것이라고 요한은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빌립이 제자가 된 것은 1:43절이기에 빌립은 2장에 나오는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셔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질문하신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렇게 빌립을 시험하신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기적으로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제공하신 것처럼 하시려고 하시면서도 빌립을 시험하여 물은 것이다. 과연 빌립이 가나 혼인잔치를 기억하고 예수께서 하실 일을 대답할지 물은 것이다.
그러나 7절에서 빌립은 예수께서 원하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빌립은 빠르게 계산을 해 보고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한다고 해도 200 데나리온의 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품삯의 기준이 되던 로마군인 하루 품삯이다. NIV는 반년 품삯보다 더 라는 표현을 썼지만 노동자들이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잘못된 계산이다. 만약 한달에 20일을 일한다고 한다면 10개월 품삯이다. 일 못하는 날들을 고려하고 농한기를 고려한다면 일년 품삯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큰 돈을 쓰더라도 그 무리를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빌립이 가나 혼인잔치의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이다. 그러나 빌립은 계산기를 두들겨 답을 했기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요한이 오늘 말씀을 통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불가능한 일을 예수님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고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