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4 예수께서 갈릴리 건너편 외딴 곳의 산에 앉으시고 큰 무리들이 따라와서 예수님 앞에 앉았는데 그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거부하던 유대인들에게 너희를 고소하는 자는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너희가 너희의 중보자로 희망을 걸고 있는 모세라고 하시며 모세가 기록한 것을 믿지 않고 있기에 예수님 자신의 말씀도 믿지 않는 것이라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큰 무리가 따라갔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 앉으시는 장면이다.
6:1절은 “그 뒤에”라는 말로 앞부분과 시간과 장소가 바뀐 것을 나타낸다. 그 내용이 연결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어떤이는 6장이 4장 끝부분에 붙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5장이 6장과 7장 사이 어디엔가로 보내야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은 마가와는 달리 시간과 장소의 흐름에 따라 예수에 관한 증언을 배치하지 않았다. 요한의 관심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에”라는 말은 일어난 사건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 안식일에 관해 논쟁을 벌이신 것을 중심으로 하신 말씀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요한은 “그 뒤에”라는 말로 앞부분과 시간적으로 지리적으로 단절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해 증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부분과 긴밀하게 연결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5:45-47절은 예수께서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모세가 하나님께 고소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말로는 모세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 모세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하셨다. 그렇기에 모세가 예수님 자신에 관해 증언하여 기록한 것도 믿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는 것이라 하셨다. 5:42절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로 온 자신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내용도 모세와 연관시키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하는 내용으로 5장과 연결이 된다. 6:3절에서 예수께서 메마르고 외진 산지에 앉아 계시고 무리들이 그곳으로 나오는 모습은 출애굽기의 이야기와 연관된 완벽한 배경의 그림을 형성하는 것이다. 요한은 분명히 출애굽 때 시내산에 모인 백성들의 장면과 연결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을 모세와 연관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시내산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다고 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로 불렀지만 요한복음이 기록되어 전해지던 1세기 말 그리스-로마 세계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디베랴 바다로 알려졌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 곧 지금은 디베랴로 불리는 바다를 건너가셨다고 설명한 것이다. 대부분 주석가들은 헤롯 안티파스가 A.D. 26년 자신의 수도를 갈릴리 바닷가에 건설하고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티베리우스로 붙인 것이고 그 이후에 사람들은 점차 갈릴리 바다를 티베리우스 바다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2절은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갔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징들을 구경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갔다는 말은 계속해서 따라갔다는 뜻이다. 한꺼번에 큰 무리의 사람들이 따라갔다기 보다는 예수님을 따라오는 무리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장면이다. 구경했다는 말도 한번 구경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구경했다는 뜻이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께서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장면을 계속해서 구경한 사람들이다.
3절은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고 했다. 앉으셨다는 말도 계속해서 앉아계셨다는 뜻이다. 여기서 제자들이란 열 두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다. 열 둘이라고 따로 말하지 않은 경우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있던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말이다.
4절은 “그러나 그 때는 유대 사람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라고 말한다. 갑자기 엉뚱한 내용이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유월절은 예수께서 산에 앉으셨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적절한 배경이다. 요한 복음에 나오는 세번의 유월절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2:13, 23절에서 언급된 첫번째 유월절은 예수님 자신을 성전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또 11:55절에서 언급된 세번째 유월절은 자신의 죽음의 때에 관한 것이다. 그 중간에 나온 6:4절의 유월절은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된 빵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유월절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주를 통해 궁극적인 구원을 제공하시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엉뚱하게 유월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신 것과 연관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예수께서 새로운 출애굽으로 백성들을 이끄시고 그들에게 생명의 빵을 먹이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은 큰 무리들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이끌어내시고 산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영생을 줄 생명의 만나를 먹이시는 분이신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지금도 생명의 말씀을 공급 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