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36-38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 관해 완전히 증언해 주셨는데도 유대 사람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의 모습을 보거나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려 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이 자신에 대해 증거했을 때 자신들의 기다리던 메시야가 올 것으로 기대하고 요한이 살아있어 작은 빛을 비추는 동안에만 그 빛을 보고 기뻐 찬양을 했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 보다 더 큰 증인이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원어에서 36절은 “나는 그러나 가지고 있다” 라는 순서로 되어있다. 여기서 나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는 필요가 없는 말인데 특별히 나를 강조할 때만 쓰인다. 더구나 그 위치도 특별히 강조하여 맨 앞에 두었다. 예수께서는 요한보다 더 큰 증언을 갖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다. 유대 사람들은 요한의 증거가 잠시 등잔불처럼 타는 동안 곧 자기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이 올 줄 기대하고 기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언을 의지하신다는 뜻이다. 그 증언은 하나님의 증언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완성하라고 내게 주신 일들 때문이다. 개역은 “역사” 라고 단수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새번역처럼 “일들”로 복수이다. 아버지께서 완성하라고 예수께 주신 일들이란 무엇인지 바로 이어서 설명하신다. 그것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증언하여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일들이란 예수님의 모든 지상사역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신 일들이다.
37절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에 관해 완전히 증언하셨다고 하셨다. 증언하셨다는 말은 원어에서 완료형이기에 완전히 증언해 주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 대해 완전히 증언해 주신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1:32-33절을 보면 요한도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서 이 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것도 역시 아버지께서 아들에 관해 증언해 주신 것이다. 그 밖에도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모든 일들이 다 아버지께서 아들에 관해 완전하게 증언해 주신 것이다.
37절 뒷부분은 너희는 그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그 모습을 본적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들었다는 말과 보았다는 말은 둘 다 완료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인들은 한 번도 그 음성을 완전하게 들은 적도 없고 그 모습을 완전하게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뜻이다.
이사야 48:8절에서도 너희는 결코 듣지 않았다고 하셨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분명히 들려주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단 한 번도 완전하게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증거를 보여주셨지만 한 번도 완전하게 보고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모습도 보여주셨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들으려고 하지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고소하고 계신 것이다.
38절은 또 그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앞에서 말씀하신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완료형이지만 마음에 간직하는 것은 현재형이다. 과거에 이미 듣고 본 것을 간직하는 것은 늘 계속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전히 들려주셨고 완전히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간직하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듣고 마음 속에 간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구약성경 전체에 나타나 있지만 특별히 이제는 선지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직접 오셔서 완전하게 들려주시고 완전하게 보여주셨는데도 아직도 계속해서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를 보내신 분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예 믿지 않고 있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는데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최고로 잘 믿는다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도 아예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완전히 듣게 하셨고 하나님의 모습을 완전히 보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2:44절에서도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마음에 간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마음에 간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생각대로 듣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보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간직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이 와서 잠시 불꽃놀이처럼 작은 등불을 비출 때 그것을 보고는 입이 찢어질 듯 크게 기뻐하면서도 영원한 빛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을 들려주시고 보여주실 때는 거부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욕심과 자신들의 이성적인 생각으로 예수님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들 멋대로 믿고 간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신들만 잘 살게 해 줄 구세주로만 믿은 것이다. 그래서 북아메리카에 온 개신교도들은 원주민을 다 죽인 것이다. 남미로 간 카톨릭 교도들은 손으로 일을 시키는 경우에는 원주민들의 발을 잘라 놓고 일을 시켰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믿고 있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우리 욕심과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열심히 믿는다 하지만 한 번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적이 없는 예수님 당시 유대사람들처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