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14-15 예수께서는 자신이 치료한 병자를 찾으신 뒤에 죄를 지어 더 나쁜 것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고 그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가 자신을 건강하게 해 주신 분이라고 선포했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이 만든 안식일 법을 어긴 것에만 분노하여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고소했고 그 사람은 자신을 치료하신 분이 명령하신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 사람을 다시 만나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고 그 사람은 자신을 치료한 사람이 예수라고 유대사람들에게 알리는 장면이다.
14절은 이 일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만났다는 말은 어쩌다 우연히 마주쳤다는 뜻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찾다가 발견했다는 뜻이다. 어떤 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을 다시 찾은 것은 초자연적인 지식의 또 다른 예라고 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과거 불쌍한 처지의 몸으로는 갈 수 없던 곳인데 이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몸이 불편할 때 이 사람은 건강해져서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된 뒤 성전에 갔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초자연적 지식으로 그 사람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라기 보다는 명절이니 당연히 성전으로 갔을 것을 아시고 이 사람을 성전에 가서 찾으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9:35절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치료한 소경을 의도적으로 찾았다며 이 사람도 충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찾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찾다가 발견하신 뒤에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완전히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하셨다. 개역은 단순히 “네가 나았으니” 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완전히 나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번역은 “네가 말끔히 나았다” 라고 번역한 것이다. 새번역이 완전히 나았다는 원어의 의미를 잘 살려서 번역했다. 그러나 새번역은 완전한 문장처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라고 마침표를 찍었지만 원어는 완료형 분사이기에 “네가 말끔히 나았으니”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원어에서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뒤 “더 나쁜 것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이라는 이유를 덧붙이셨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죄 때문에 38년 동안 불구의 몸으로 살았다는 뜻인가? 당시 유대인들은 심각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한복음 9:2절에서 제자들이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의 죄냐 아니면 부모의 죄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자신의 죄 때문에 불구의 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쁜 것에 네게 생기지 않도록” 라는 말은 또 다시 불구가 된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서 살던 것 보다 더 나쁜 장애는 없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더 나쁜 것이란 육체의 장애가 아닌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육체적 불구보다 더 나쁜 것은 도덕적 불구라며 이제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라는 뜻은 아닌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육체적 약함을 이미 치료해 주셨기에 이제는 그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 말씀은 어떤 특정한 죄로 인해 장애가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38년 동안 비극적인 삶을 산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이는 이어지는 문맥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15절에서 그 사람이 멀리 갔다고 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에게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신 분은 예수라고 큰 소리로 알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이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협박을 받았기에 유대인들이 예수께 적대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안식일을 범한 죄로 고발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이도 역시 요한복음을 받던 사람들의 교회를 떠나 대적의 편에 선 것과도 같은 행동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선포한다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5번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발한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는 한번도 없다. 15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신다는 뜻으로만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한 것이지 안식일에 자신을 고쳐준 사람이라고 고발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 더 나쁜 것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은 이 사람이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함으로 영원한 지옥에 빠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간 죄로 고소가 된 상태이기에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박해를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들의 편에 서게 되면 38년간 비참한 삶을 산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더 나쁜 일은 예수를 부인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