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용 미리보기 · 교수님 확인 뒤 확정합니다 · NanuriWeb
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5:9

Dawn Word

요한복음 5:9

b-13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을 대적한 유대교 지도자들

2023. 12. 9.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5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5:9b-13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들이 만든 안식일 법을 어긴 것에만 분노하여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고소했고 그 사람은 자신을 치료하신 분이 명령하신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서른여덟 해가 된 병자를 보시고 그 형편을 다 아셔서 그 사람이 낫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확인 하신 뒤 일어나 자리를 집어들고 걸어가라고 하시자 그 사람은 즉시 건강해져서 가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대 사람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한다고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9절 뒷부분은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초점은 그 명절이 어느 명절이냐도 아니니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셨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중심도시인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치료하셨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마치 폭탄을 터트려 이 복음서를 받던 사람들을 친 것이고 음악으로 말하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최고로 크게 울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강력한 통제로 어느 누구도 안식일을 공공연히 어기는 것을 상상도 못했었다.

10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9절 뒷부분과 연결이 된다. 예수께서 이 병자를 치료하신 날이 안식일 이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유대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말했다. 병이 나은 사람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병이 완전히 나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불쌍한 사람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며 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그 불쌍한 사람을 전혀 불쌍히 여긴적도 없고 치료 받은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들은 “오늘은 안식일이다. 그러니 네가 네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라고 말했다.

합당하지 않다는 말은 율법을 어겼다는 뜻이고 심각한 벌이 따른다는 무서운 말이다. 유대인 학자들은 안식일을 어기지 않도록 39가지 형태의 안식일 금지 조항을 정했는데 미쉬나에 기록되어 있다(Sabbat 7:2).그 중에는 바느질 두 땀도 금지하는 조항도 있다. 한 땀을 바느질하는 것은 괜찮지만 두 땀 이상은 안된다는 뜻이다. 이 치료받은 병자는 심각한 고소를 받은 것이다.

이러한 안식일 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이 하나님 노릇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에스겔 20:11-12절과 19-20절에서 하나님께서 규례와 율례와 안식일을 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것을 자기들 뜻대로 바꿔지켰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셨다. 오늘 본문에 나온 치료받은 병자가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들고 가는 것 조차도 금한 것이 바로 에스겔에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자기들 멋대로 바꾸어서 지킨 것이다.

그러자 11절에서 그 치료 받은 병자는 대답하기를 나를 건강하게 만드신 분이 내게 말했다. “네 자리를 집어들어라! 그리고 걸어가라!” 고 말했다고 했다. 38년된 병자를 치료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계신 예수께서 집어들라고 했고 걸어가라고 했기에 걸어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며 자리를 집어들라고 했고 걸어가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책임은 치료 받은 병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치료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다.

12절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에게 물었다. 네게 자리를 집어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은 놀라운 치유의 기적과 자신들이 세운 안식일 세부조항들을 어기도록 도전한 사람이 있다는 두가지 정보를 이 사람에게 들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만든 안식일 법을 어기도록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이 만일 진짜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면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어야 옳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만 분개하고 있었다.

13절에서 고침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예수님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때였기에 그 사람도 예수가 누구신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예수께서는 무리들이 있던 곳으로 빠져나가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께서는 영어 번역들 중에는 거기에는 무리들이 많았으므로 예수께서는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뜻으로 번역한 것도 있다. 이는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예수께서는 무리들이 두려워 피하신 것이 아니라 무리들 틈으로 사라져 버리셨다는 뜻이다. 쓸데없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예수께서 피하신 것이다. 그러나 7:23절에서 또다른 명절에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는 피하지 않고 그들과 논쟁하신 것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직 때가 안되었기에 피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것도 그 날은 노예들도 일을 시키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뜻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신 것이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39가지 세부 조항들을 어기지 않으려고 두려워하며 지내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에 초점을 두어야지 물건을 사는 것이나 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듣고 함께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요한복음 새벽말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