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51-54 왕의 신하는 가버나움으로 내려오다가 자기 종들을 만나 아이가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시각을 확인해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시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로 인해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가셨을 때 가버나움에서 온 왕의 신하가 예수께 와서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서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을 책망하시며 말씀으로 치료해 주시고 가라 하시니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을 향해 계속해서 길을 갔다. 이어지는 말씀은 왕의 신하가 가서 확인해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시각에 아이가 살아났다는 것을 알고 온 집안이 함께 믿은 내용이다.
51절은 그가 이미 내려가는 중에 그의 종들을 만났는데 그의 그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했다고 했다. 내려간다는 말은 지형 때문이다. 가나는 높은 언덕의 평평한 지형에 있고 가버나움은 해수면보다 700 피트나 낮은 갈릴리 호수가에 있기 때문에 내려갔다는 말을 쓴 것이다. 전화가 있었다면 전화로 아이가 살아났다는 것을 즉시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달려가서 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아이가 살아나자 종들이 가나로 가서 주인에게 알리러 가는 길이다. 그래서 중간 지점 쯤에서 종들과 마주친 것이다.
52절은 “그러므로 “ 라는 말로 51절과 연결된다. 자기 종들을 마주쳤으므로 왕의 신하는 아이가 낫기 시작한 시각을 물으니 종들은 어제 칠시에 열기가 떠나갔고 대답했다. 칠시는 오늘날 시각으로 환산하면 오후 1시이다. 원어의 표현은 열기가 떨어졌다가 아니고 열기가 떠나갔다는 뜻이다. 가나에서 가버나움은 약 24마일 정도가 된다. 빨리 걷는다면 시간당 3마일도 가능하겠지만 오랜 시간을 그렇게 걸을 수는 없기에 시간당 2.5 마일 정도를 걷는다면 9.6시간이기에 가다 쉬다 한다면 열시간은 걸린다. 왕의 신하가 오후 한시에 출발했다면 오늘날과는 달리 밤에는 걸을 수 없기에 중간에 하룻밤을 잔 뒤 다음 날 또 걸었을 것이다.
53절도 역시 “그러므로” 라는 말로 52절과 연결된다. 어제 오후 한시쯤 열기가 떠나갔다고 하였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 아버지는 그 시각이 바로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이 지금 살아났다” 라고 말씀하신 그 시각인 것을 알고 그와 그의 온 집이 다 믿었다고 했다. 50절과 마찬가지로 “새번역은 살것이다” 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했지만 원어는 현재형이기에 말씀하신 그 순간 살아났다는 뜻이다.
또 새번역은 그의 집안이라고 번역했지만 오해하기 쉬운 번역이다. 한국어에서 집안이라는 말은 일가친척들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원어는 단순히 “그의 집”이다. 그의 집에 속한 가족과 종들이 다 믿었다는 뜻이다. 개인 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서구 사회라면 그의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을 수는 없다고 의문을 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공동체 중심의 사회였고 그 집의 중심 인물이 믿으면 모두가 다 믿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공동체 중심의 사고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가장이 믿으면 모두가 다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 집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믿었다는 것이 가장의 결정에 따라 모두가 강제로 믿었다는 뜻은 아니다. 요한이 사용한 믿었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믿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42절에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직접 듣고 그가 세상의 구주임을 알았다고 했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기억하고 믿거나 믿지 않았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2:22; 3:12; 4:41. 42, 50, 53; 5:24, 38, 47; 8:30, 31, 45, 46; 10:25; 14:29; 17:20; 19:35). 요한복음에서는 믿는다는 말이 백번도 더 나오는데 대부분 표적이나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고 그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라는 문맥에서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신하의 집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먼 곳에서 말씀하셨는데도 아이가 나은 것을 보고 그의 말씀의 능력으로 인해 모두가 믿은 것이다.
54절은 이것이 예수께서 유대에서 나와서 갈릴리로 오신 이후 행하신 두번째 표적이라고 했다. 첫번째 표적도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기적이다. 두 가지 표적 모두가 다 초점은 기적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에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니 죽어가던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