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43-45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신 뒤 갈릴리로 가시면서 예언자가 고국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처럼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기적만 바라고 있었다.
이전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을 듣고 예수께로 나온 수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완전히 듣고 완전히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내용이다.
43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연결이 된다. 앞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참된 신앙고백을 하며 환영했으나 두 날들이 지난 후에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실 일이 있으셨기에 자신을 그렇게 믿고 환영하는 사마리아에 계속 머무르지 않고 갈릴리로 가신 것이다.
새번역에서 44절은 괄호로 묶어 놓았다. 44절은 본문의 흐름을 끊는 엉뚱한 내용이라고 보고 괄호로 묶어 놓은 것이다. 새번역 번역자들은 44절에서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고 했기에 고향인 갈릴리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갑자기 나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현대의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 후 문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초기 사본 필사자들도 이 부분이 전 후 문맥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 이 부분을 포함한 사본들과 이 부분을 포함하지 않은 사본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초기 사본들은 예외없이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의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44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43절과 이어간다. NIV번역자들도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안된다고 보고 “Now”로 바꾸어 번역했다. 새번역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생략하며 “예수께서 친히 밝히시길” 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는 증언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증언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경험은 유대지방에 가셨다가 배척을 받으신 것이고 사마리아를 잠깐 지나가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도 역시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그의 고국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ESV는 “his own hometown” 이라고 번역했지만 NASB나 NIV는 ‘his home country”라고 번역했다. 이는 요한복음 1:11절에서 “자기 땅” 이라고 한 말과 표현만 다른 같은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는 고향 나사렛이 아니라 예수께서 태어나신 이스라엘을 뜻하는 것이다. 초기 교부인 오리겐도 이스라엘로 해석했고 현대의 일부 성서학자들도 역시 이스라엘로 해석한다. 사마리아를 거쳐오시면서 사마리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교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 가셨을 때는 환영을 받지 못했는데 이방 나라로 취급하던 사마리아에서는 환영을 받은 것을 경험하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경험을 “예언자가 고국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공관복음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은 경우에 하신 말씀으로 되어있기에 이러한 표현은 여기서 엉뚱한 곳에 쓰였다고 보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실제 예수께서 하신 일과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료를 보고 편집하여 기록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같은 말씀을 지상 사역기간 동안 딱 한번만 하셨을리가 없다. 요한은 실제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떠나면서 하신 말씀을 증언한 것이다.
4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연결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셨을 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러므로 라는 말도 44절과 전혀 연결이 안되고 오히려 44절을 빼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기에 새번역은 44절을 괄호로 묶어 제외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맞아들인 이유가 나온다. 갈릴리 사람들도 예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것을 보았기에 맞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그들도 명절을 지키러 거기에 갔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2:23-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을 때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지만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으므로 그들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셨다고 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갈릴리 사람들이나 모두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만 보고 예수를 믿고 환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24절에서 나온 것처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각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 아신 것이다. 따라서 4:45절에서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맞아들인 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존경해서 맞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기적을 구경하고 기적을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했다는 것을 예수께서는 다 아신 것이다. 4:44절은 2:24절에서 모든 사람을 다 아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기적을 보고 믿던 예루살렘 사람들이나 그 기적을 구경하고 돌아온 예수님을 맞아들인 갈릴리 사람들이 대조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래서 예언자가 고국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속담을 인용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 부분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