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31-33 제자들은 자신들이 구해온 음식을 예수께 권했지만 예수께서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비유로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사마리아 여인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의 증인들로 등장했고 여인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달려가서 자신의 행한 모든 일을 다 아는 분을 만났다며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전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예수께 나왔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이 떠난 사이 제자들이 예수께 음식을 잡수시라고 하자 예수께서는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대답하시는 내용이다.
31절은 “그러는 사이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본래 이 말은 둘 사이 빈 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떠난 시각과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시각 사이 시간을 의미한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께 드시라고 간청을 했다. 6절에 보면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고 했기에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사온 음식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랍비” 라는 말이 직접 부르는 말로 쓰일 수 없다며 “랍비에게 말하길, 드십시오!” 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영어 번역들도 전부 "랍비여!" 라고 부르는 호칭으로 번역했다. 요한복음에서 여덟 번 쓰였는데 모두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기에 여기서도 분명히 부르는 말로 쓰인 것이다.
32절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라고 하셨다. 32절의 양식이라는 말과 34절의 양식이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다른 말이다. 그리스어 사전을 보면 32절에서 양식으로 번역된 말은 원어에서는 먹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고 34절에서 양식으로 번역된 말은 먹은 음식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32절에서는 내가 먹는 양식은 따로 있다는 뜻이고 34절에서는 “내가 먹은 음식은” 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마리아 여인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33절은 그러므로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누가 먹을 것을 그에게 드렸을까?” 라고 한 것이다. 신명기 8:3절에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하신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을 주실 것으로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는 양식을 영원한 양식으로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샘물과 영원한 양식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기에 이어지는 34절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생명의 양식과 생명의 샘물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간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