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4-8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여 가시며 의도적으로 수가성으로 들어가서 야곱의 우물 곁에서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요한보다 더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유대를 버리고 갈릴리로 가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사마리아로 거쳐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내용이다.
4절은 그러나 그는 사마리아를 통하여 지나가야만 했다라고 말한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오가는 최단거리 직선코스는 사마리아를 거쳐 가는 길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도 갈릴리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곤했다고 기록하고 있다(Ant., xx. 6.1). 더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한참 북쪽으로 올라온 살렘 근처에 계셨기에 그곳은 사마리아 땅의 접경지역이기에 거쳐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해야만 했다” 라는 말을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로 대부분 해석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을 꺼렸기에 멀더라도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야만 했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해야만 했다" 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열 번이 나오는데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 사용했다. 이어지는 문맥에서 야곱의 우물에 앉으신 것이나 추수할 때가 되었다 하신 내용으로 볼 때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으신 것이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유대인 엘리트들은 앗시리아의 혼합정책으로 섞인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럽게 여겨 상종도 하지 않았었다. 5절은 예수께서 이러한 편견을 넘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도 여행할 때 어쩔 수 없이 통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예수님처럼 성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들을 것을 알고서도 그 성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5절을 볼 때도 예수께서는 단순히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사마리아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신 것이다.
5절 끝부분은 그 곳이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과 가깝다고 했다. 이는 창세기 48:22절에 나온다. 야곱이 임종시에 요셉에게 세겜을 준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요셉의 유골을 갖고 나와 세겜 땅에 묻었다. 수가라는 성읍은 세겜에서 1마일 떨어져 있던 곳이다. 6절 앞부분에서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고 했다. 여기서 우물이란 말은 본래 저절로 물이 솟아내는 샘물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야곱이 땅을 파서 만든 우물이다. 이러한 두가지 역사적인 정보를 말하는 것은 그들도 본래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려는 것이다.
6절 뒷부분은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는데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피로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다” 라고 했다. “피로하셔서” 라는 말은 완전히 지치셨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씨뿌리거나 추수하는 노동 때문에 완전히 지쳤다는 뜻이다. 38절에서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이란 말에서도 나왔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더럽게 여기던 사마리아의 한 성 안으로 씨를 뿌리고 추수하러 들어가셨다가 지치셔서 우물 곁에 앉으신 것이다. 그 때가 낮 12시쯤이었다 했는데 하루 중 최고로 더울 때였기 때문이다.
7절을 보면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나온다. 예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자와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약 아내가 아닌 여자와 길게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둘 사이를 수상한 관계로 여겼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여자라면 더욱 부정하게 여겼기에 상종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8절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다고 소개한다. 원어는 완전히 다 가버렸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와 단 둘이 우물가에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정말 크게 오해 받을 일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길게 대화하는 것은 성관계와 동일한 것이라고 여겼었기 때문이다. 또 만약 남녀가 단둘이 20분이상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벌써 잠자리를 함께 한 사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창세기 28절에서 야곱이 라헬을 만나는 장면과도 같고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가 이드로의 딸들을 만나는 장면과도 같다. 두 경우 다 우물가에서 눈이 맞아 결혼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상황이다. 이어지는 9절에서 여인도 예수께서 자기에게 수작을 걸고 있다고 오해하고 어째서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 남자들이 더럽게 여기는 사마리아 여자를 유혹하려는 더러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두가지 장벽을 의도적으로 허물어버리신 것이다. 그 첫번째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장벽이다.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신 것이고 의도적으로 수가성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두번째 장벽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장벽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그릇으로 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가진 그릇으로 물을 마시려고 물을 달라고 까지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을 쓰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