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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3:24-27

Dawn Word

요한복음 3:24-27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넘지 않는 요한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3. 11. 14.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3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3:24-27 요한의 제자들은 어떤 유대인과 어느쪽의 침례가 진짜로 완전한 정결을 가져오는 것이냐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요한에게 말하자 요한은 하늘로부터 자신이 받은 것만 한다고 대답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대지방으로 가셔서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시면서 침례를 주셨는데 그곳은 요한이 침례를 주던 근처이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 요한에게 나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의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께로 몰려든다고 하는 내용이다.

2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왜 사람들이 아직도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 때는 아직 요한이 옥에 갇히지 않았던 때라는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는 요한이 잡히신 뒤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요한이 잡히시기 이전 예수께서 하신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원어에서 25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침례를 받는 사람들과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런데 25절은 24절과 전혀 상관이 없는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정결예법에 관한 논쟁이 나온다. 대다수의 성경 해석자들은 유대교의 정결예법과 요한의 정결예법인 요한의 침례을 두고 서로 논쟁을 벌였다고 해석한다. 만약 그렇다면 25절 앞에 나오는 ‘그러므로’ 라는 말이 없어야 한다. 또 그러한 논쟁은 전후 문맥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이 된다.

그러므로’로 연결되려면 22-23절에 비교된 것처럼 예수님의 침례와 요한의 침례가 비교되어야 한다. 이는 유대인들이 정결예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물론 일상 생활과 성전 제사에서 정결예법을 지켰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신들을 완전히 정결하게 할 것이라 믿었다. 요한에게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선지자냐 물은 것도 요한이 바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결케 할 자인가를 물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논쟁도 요한의 정결예법과 예수님의 정결예법 중에 어느 쪽이 완전한 종말론적 정결이냐를 논쟁했을 것이다.

예수님과 요한은 서로 가까운 곳에서 침례를 주었다. 예수님의 기적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침례도 받은 유대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이들을 보고 자신들의 스승인 침례 요한의 침례가 원조라고 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침례를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침례가 진짜라고 했을 것이다.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면 그분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정결하게 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자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논쟁을 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자신들이 원조 침례를 받았다고 옥신각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논쟁이 끝이 안나자 자신의 스승에게 가서 말한 것이 26절이다. 아마도 요한의 제자들은 상대 유대인들에게 밀리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요한이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고 예수님과는 달리 기적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24-26절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서로 자기 아빠가 더 높다고 말싸움하는 모습과도 같다. 그러다가 아빠에게 달려와 확인하려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랍비님, 보십시오. 요단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곧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그 분이 침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에게로 모여듭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예수님께 밀린다고 생각하고 편들어 달라고 고자질한 것이다.

어린아이들처럼 자신들을 편들어 달라는 제자들의 말을 들은 요한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라고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주신 것을 요한은 받았을 뿐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지 않은 것을 주제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1:23절에서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라고 한 것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하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무리가 근처에서 침례를 주자 요한의 제자들은 경쟁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자기 스승이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 스승이 점점 밀리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받은 것 이상을 넘어가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 덕분에 유명해지면 분수를 넘어설 수 있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 바울도 스스로 바른 신앙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던 자들에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요한 같은 겸손이 예수께서도 가르치신 겸손이고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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