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2 표징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믿은 사람들 중에 니고데모라는 유대교 지도자가 밤에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으로 인정했다.
이전 말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징들을 보고 믿었으나 사람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표징을 보고 밤에 몰래 예수께 온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가 등장한다. 오늘 말씀은 그 첫부분이다.
3:1절은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 중 한 사람이 있었다” 라는 말로 시작하며 앞부분과 연결이 된다. 이는 2:23-25절에서 표징을 보고 그 이름을 믿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는 말과 연결이 된다. 이 사람은 표징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믿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구체적인 예를 든 것이다.
그 이름은 니고데모이다. 니고데모는 그리스식 이름이다. 니코는 그리스어로 승리자 라는 뜻에서 온 말이고 데모는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백성들의 승리자 라는 뜻이다. 이 이름의 의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영웅이라는 뜻이다. 운동화 메이커 중 NIKE도 역시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사람들 중에 흔히 쓰던 이름이다. 유대인들의 이름에서도 같은 이름이 발견된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보면 아리스토불루스 II(69-63 BC)의 사신으로 폼페이에게 갔던 사람의 이름도 니고데모이다(Antt. xiv. Iii. 2). 탈무드에도 니고데모 벤 고리온 이라는 이름이 나온다(Taanit 20a).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 때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누가복음 18:18절에서 젊은 관원이라고 한 말을 근거로 보면 이 사람이 요한복음에 나온 니고데모일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증명할 근거는 없다. 만약 이 사람이 예수님 당시 30세였다면 예루살렘 멸망 때는 70세쯤이 된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통치자라고 했다. 통치자라는 말은 정치 지도자일 수도 있고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데 3:10절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를 유대인의 선생이라고 불렀기에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일 것이다. 통치자 라는 말을 70명으로 구성된 유대인 최고 통치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일 것이다. .
2절에서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말했다고 했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것에 대한 해석은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요한복음에 나타난 빛과 어두움의 상징을 근거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1:4-5절에서 빛과 어두움을 언급한 것을 근거로 그는 아직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밤은 영적인 어두움의 상태에 있었던 것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대부분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반대하기에 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 왔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동료 유대교 지도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왔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셋째 밤이라는 말 자체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밤에 왔다는 것이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진 때를 기록한 것이고 다른 의미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낮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에 조용한 대화를 할 시간을 찾은 것 뿐이라는 것이다. 또 랍비들의 문헌에 따르면 랍비들이 낮에는 율법을 가르치고 밤 늦도록 율법을 공부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선포했다. 그렇기에 니고데모는 이러한 밤의 축복을 구하며 참된 빛으로 나오는 사람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밤에 찾아온 것을 아직도 영적인 어두움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한 것이고 요한이 실제 목격한 것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영적인 해석이 깊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복음서의 기록이 실제 목격자들의 증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신분으로 볼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찾아왔다고 볼 수 있다. 문맥이나 랍비들의 문헌을 따라 해석한다면 특별한 의미 없이 랍비들은 밤에 율법을 공부했기에 밤에 찾아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지는 말은 “랍비여” 라는 말이기에 밤에 율법을 공부하러 예수를 찾아온 것일 것이다. 니고데모는 “우리는 안다” 라고 했다. 우리는 니고데모가 속한 바리새파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기적을 보고 예수의 이름을 믿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만약 바리새파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인줄 인정하면서도 반대했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러한 표징들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니고데모가 말한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믿은 사람들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니고데모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예수께 배우러 왔다는 것이다.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께서도 믿지 않으셨다고 했지만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적만 보고 기적만 추구하며 믿는 사람들은 올바른 믿음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놀라운 체험이 말씀을 공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예수님 기뻐하시는 참된 믿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