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23-25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믿었으나 사람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이전 말씀에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깨달아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다 알고 계셨다는 내용이다.
23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제자들의 참된 믿음과 기적을 보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대조한다. 그러나 대부분 영어 번역들도 이를 “now”로 번역했거나 삭제했다. 22절에서는 제자들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 부활하신 뒤에야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토대로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23절의 “그러나”는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가 행하시는 표징을 보고 믿엇다고 했다.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말씀을 깨닫고 믿는 믿음과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을 비교한 것이다. 여기서 요한의 초점은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기적은 진짜 믿음을 향한 첫걸음이라며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적을 보고 믿기 시작한 모든 사람들이 다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는 사람들만이 믿음의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표적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온 증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시점에서 2장에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밖에 없고 다른 복음서에도 예루살렘에서 행한 기적이 안나와 있기에 많은 학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에는 아직 예루살렘에서 행한 기적이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표징이라는 말을 하나님에 대해 심오하고 실존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모든 행동이나 말로 이해할 수 있다며 해석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표적을 보고 믿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성전청결 사건이 표적일 것이라며 표적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서 해석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다. 어떤 이는 이 부분이 예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 행하신 것에 대한 기록일 수 있다며 시간 순서를 바꿔서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현대인들의 논리와 사고로 고대인들의 증언을 이해하고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모든 일을 순서대로 다 기록한 것이 아니다. 기록한 사람마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자신들이 목격한 예수에 대해 각자가 다른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앞뒤가 딱딱 맞도록 쓴 요즘 드라마 각본이 아니고 CCTV처럼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개역은 원어의 24절에 있는 “그러나” 를 생략하고 번역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은 새번역처럼 “그러나”라는 말을 살려서 번역했다. 여기서 그러나는 무지한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과 대조되는 예수님의 전지하심을 대조하는 것이다. 한글 번역에서 몸을 맡기지 않았다는 의미로 번역한 말은 예수님 자신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그들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가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설명한다. 요한은 요한복음 첫부분부터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강조했다. 여기서도 요한의 초점은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사람의 마음 속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25절은 24절의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에 관해 어느 누구의 증언도 필요하지 않은 분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줘야 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말해 줄 사람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사람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속성이다. 예레미야 17:10절에서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누구신가 분명히 깨닫기 전에는 진짜 믿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나서야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 앞에서 거룩한 척하고 의로운척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 마음 까지 다 아신다. 누가 진짜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다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