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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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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2:17-18

하나님의 공동체를 회복하시려는 노력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들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3. 10. 30.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2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2:17-18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에 대해 제자들은 시편 구절을 떠올리며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회복하시려는 모습에 놀랐지만 성전 관계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를 보여달라며 반박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제물들을 팔고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성전 바깥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못하게 하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에 대한 제자들과 유대 사람들의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17절은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을 본 제자들의 반응이다. 17절은 제자들은 기억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원어는 기억되어졌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암송하던 시편 구절이 저절로 떠올랐다는 뜻이다. 그 구절은 “당신의 집에 대한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이다. 당신은 주님을 가리키는 말이기에 주님의 집을 향한 열정으로 번역한 것이다.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는 “나를 삼켰다” 라고 했는데 요한복음 기록자는 “나를 삼킬 것이다” 라고 미래형으로 바꿔 기록했다.

삼킨다는 말은 완전히 먹어버린다는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불이 다 태워서 없앨 때도 쓰였다. 칠십인역 출애굽기 15:7절에서는 주님의 진노가 그들을 밀짚같이 태워버렸다고 할 때 썼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 관계자들의 분노의 열기가 예수님을 다 태워버릴 것이라는 뜻으로 시편 69:9절을 인용한 것이다. 제자들은 이 일 때문에 예수께서 성전 관계자들에게 죽을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았다는 뜻이다.

시편 69:9절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열정 때문에 모든 비난이 자기에게 쏟아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비난과 모욕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편 기록자는 주님이 받아야 할 비난을 자신이 대신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의 집이란 단순히 예루살렘 성전 건물이 아니다. . 성전은 하나님의 집인 신앙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전 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인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겠다는 뜻이다. 시편 기록자는 무너진 신앙공동체를 재건하려 하자 온갖 욕과 비난을 다 받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것을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시려는 노력으로 보았고 그 때문에 엄청난 비난이 예수님께 쏟아질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이 시편이 떠오른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본 제자들의 반응을 두려움과 놀라움이다. 두려움이란 성전 관계자들은 이러한 도전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놀라움은 그 결과에 대한 염려없이 단호하게 행동한 것이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행동의 결과가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 그것은 죽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제자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예수님의 담대함에 놀란 것이다.

18절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대한 성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예수님처럼 성전에 와서 다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권위는 오직 하나님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에 대해 반응하며 예수께 말하기를 “이런 일을 한 것에 대해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겠느냐?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그들도 자신들이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그렇게 책망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뿐이라고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냈다는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달라는 뜻이다.

제자들의 반응은 죽을 수 있는 일을 그렇게 단호하게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놀란 것이다. 제자들도 대제사장들과 그를 따르는 성전 관계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성전 관계자들은 하나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자신들을 책망할 수 없다며 오만한 태도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자라는 증거를 내 놓으라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양심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반응이나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다 사람들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역시 사람들의 눈초리나 반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 보는 앞에서만 거룩하게 행하려 하기 쉽다. 사람들의 눈에 좋게 보이도록 신앙생활을 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옳지 않은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계시록 2:8-11절에 나온 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핍박을 받을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도 각오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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