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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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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1:40-42

형제를 메시야께로 데려온 안드레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3. 10. 19.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40-42 메시야를 발견한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메시야를 발견했다고 전하며 예수께 데리고 오자 예수께서는 보시고 게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두 제자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숙소로 초대하여 함께 머물며 대화를 나누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의 제자 중 한 명인 안드레는 자기 형 시몬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언하여 예수께로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40절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사람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였다고 말한다.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 모든 성도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시몬 베드로였기에 안드레를 시몬 베드로의 형제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41절은 개역과 새번역이 다르게 번역되어있다. 개역은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라고 번역했다. 그 의미는 안드레가 다른 제자보다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나와있지 않은 다른 제자도 역시 자기 형제를 찾으러 갔는데 그 중에 안드레가 먼저 시몬 베드로를 찾았다는 뜻이다. 영어의 ESV나 NASB나 RSV도 개역처럼 번역했다. 그러나 새번역은 “이 사람은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 말하였다” 라고 번역했다. 새번역은 안드레게 예수를 만난 뒤 무엇보다 먼저 한 일이 형 시몬을 만난일이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이다. 영어의 NIV는 새번역처럼 번역했다.

이는 사본에도 두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본들은 개역처럼 “먼저” 라는 말이 주격으로 되어있어 “그가 먼저 찾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는 소수이지만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은 “먼저” 라는 말이 목적격으로 되어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 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원어성경 위원회는 목적격이 원문으로 해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드레가 예수를 만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은 것이라는 뜻이다.

안드레가 먼저 찾았다고 한다면 둘 다 자기 형제를 찾으러 갔다는 이기에 이해하기 쉬운 의미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후대 소문자 사본 필사자들이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안드레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형제 찾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해도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수님을 쫓아 예수님이 머문 곳으로 간 요한의 제자 둘은 밤이 새도록 예수님과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진짜 메시야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41절은 그 중 한명의 제자인 안드레만 소개한다. 안드레는 날이 밝자마자 흥분된 마음으로 자기 형제 시몬에게 닭려갔다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만나서 숨을 몰아쉬며 “우리가 메시야를 발견했다” 고 했을 것이다. 개역이나 새번역에서 만났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는 찾다가 발견했다는 뜻이다. 안드레는 메시야를 찾으러 다닌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가 되었던 것인데 요한이 예수가 메시야라고 하자 따라가서 확인을 해보고는 자기 형에게 가서 우리가 드디어 메시야를 발견했다” 라고 한 것이다.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고 했다. 메시야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이고 그리스도는 같은 말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 의미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제사장이나 왕에게 기름을 붓는 것인데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 의미는 구약에 예언된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이다. 이 두 제자는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다닌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중 안드레는 자신들이 바로 그 왕을 만났다고 자기 형 시몬에게 전한 것이다.

42절은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 베드로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여기서 보았다는 말은 눈을 시몬 베드로에게 고정시키고 집중해서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집중해서 바라보았다는 말은 47절에서 나다나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시몬을 즉시 알아보시는 초자연적 지식을 나타낸느 것이다. 예수께서 시몬을 자세히 집중해서 바라보시는 것만으로도 시몬을 아신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먼저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라는 말이다. 여기서 대다수의 4-9세기 대문자 사본들과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은 “요한” 대신 “요나”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3세기 파피루스 사본 세개와 4세기 대문자 사본 한 개는 “요한”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후대의 필사자들이 마태복음 16:17절의 “바요나” 라는 말에 맞춰서 고친 것이다. 사본의 증거로 보면 “요나”가 아니라 “요한”인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보기만 하고도 알아보시고 “너는 게바라고 불릴 것이다” 하셨는데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고 설명까지 붙여 놓았다. 게바나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이다. 당시 유대인이 사람들을 부르는 전형적인 방법은 “아무개의 아들” 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마치 유럽사람들이 Peter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Peterson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게바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것인데 베드로는 나중에 반석과 같은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워나갈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에 붙여주신 별명이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메시야를 발견한 안드레의 기쁨이다. 메시야를 발견한 뒤 터질듯한 기쁨을 안고 달려가서 자기 형제 시몬에게 메시야를 발견했다고 전하고 시몬을 예수께로 이끌고 오는 장면에서 우리는 안드레의 감격을 읽을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기쁨이 지속되어야 한다. 처음에만 있고 사라진 감격이 아니라 항상 그 감격을 전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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