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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29-31

Dawn Word

요한복음 1:29-31

세상 죄를 지고 가실 하나님의 어린 양

어둠 속에 펼쳐진 말씀과 빛 · 요한복음 1장

2023. 10. 14.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29-31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하신 분이 바로 이분인데 자신도 이 분을 몰랐지만 자신이 침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수사관들이 요한에게 아무것 아니라면 무슨 자격으로 침례를 주느냐고 물었는데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자신은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끈을 풀 종이 될 자격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장면이다.

29절에는 침례 요한의 첫번째 두가지 고백들이 나온다. 그 고백은 원어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다” 이다. 따라서 29절에서 침례 요한의 첫번째 고백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보았다는 말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고 있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발견했다는 뜻이다.

두번째 고백은 “그리고 말하였다.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이다. 예수님이 오는 것을 발견한 침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보십시오!” 라고 외쳤다. 보십시오 라는 말은 소란스러운 가운데에서 조용히 하고 잠깐 주목하라는 뜻이다. 아마도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십시오!” 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 다음에 말한 내용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라는 말이다. 따라서 요한의 두번째 고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증언이란 자신이 먼저 봐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자신이 본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을 성전에서 아침 저녁으로 구별해서드리는 희생양을 뜻한다고 보고 하나님의 소유로 거룩하게 구별된 예수는 하나님의 용서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유월절 양의 주제가 18:28절과 19:36절에서 반복되어 나타나기에 예수님을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희생양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출애굽기 12:1-11절에 나오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 죄를 지고가는” 이라는 말에 있다. 이 말 때문에 이를 죄를 지고 멀리 가는 scape goat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scape goat는 양이 아닌 염소이기에 불가능하다. 요한복음에는 이사야 53장의 내용이 자주 인용되기에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유월절의 어린 양과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양을 생각하며 한 말이다. 출애굽기에서 열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모든 장자들을 죽게 하시던 밤에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은 넘어갔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모두가 다 망할 위기에 있었다. 다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으면 모두 다 죽을 위기에 있었다.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할 양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그림과 연결시킬 수 있다. 사실 이사야 53장은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는 모습이 자세히 예언되어 있다. 53:11에 보면 분명히 “의로운 종” 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이 고난 받는 종은 결국 유월절의 양처럼 자신은 죽고 대신 남을 살리는 양이다. 그래서 53:7절에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죽게 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유월절 양이 되셔서 그 피를 믿는 자들은 살려 주러 오신 양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해 주러 오신 양이신 것이다. 구약에 나타난 구원은 다른 제물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예수님이 바로 그 구원의 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한 것이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하면서 예수님의 엄청난 권위에 압도되어 있었다. 바로 앞에서 신발끈을 풀 종이 될 자격조차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어 있었을까? 답은 30절에 나온다. 30절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라고 이미 앞에서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는 말은 완전히 먼저 되신 분이라는 뜻이기 단순히 먼저 태어나신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창세 이전부터 계셨던 창조주시라고 앞에서 말했던 그 분이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다고 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알고 있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침례 요한이 증언하던 말씀이기도 하다. 침례 요한도 1:15절에서 “나보다 완전히 앞서신 분” 이라고 해서 창세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이 1:27절에서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라고 말한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이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이러한 엄청난 겸손을 깨닫고 전율을 느끼며 신발 끈 풀 자격조차 없다고 한 것이다.

침례요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엄청난 겸손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요한도 자신을 메시야에서 엘리야로 낮추고 또 엘리야에서 그 선지자로 낮추었다. 또 그 선지자에서 길을 예비하는 종으로 낮추었다. 마지막으로 신발 끈을 풀 종도 못된다며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다. 하지만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었다는 사살에는 정말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 엄청난 겸손을 실천하시는 예수님의 그 엄청난 존재감 때문에 자신은 신발 끈 풀 종이 될 자격조차도 없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한 다음에 침례 요한은 자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증언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 증언은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안 것이 아니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예수님에 대해 알았다는 것이다. 그 창조주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것이다. 그래서 대답한 내용이 31절이다.

31절은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요한 자신도 몰랐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은 “이스라엘에게 이 분을 알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시키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알린다는 말은 드러낸다는 뜻이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 모두가 밝히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에게 묻혀 있었다. 침례 요한은 침례를 주면서 오실 예수님을 증언하여 드러냈다. 또 침례 요한은 “보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무리들 앞에서 예수님을 직접 드러냈다. 요한은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회개하고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라고 선포해서 예수님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침례 요한처럼 이유를 따지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침례 요한처럼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해도 그냥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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