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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요한복음 › 1:24-28

Dawn Word

요한복음 1:24-28

자신을 한없이낮추어 소개하는 요한

2023. 10. 13.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1:24-28 수사관들이 요한에게 아무것 아니라면 무슨 자격으로 침례를 주느냐고 물었는데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자신은 자신의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끈을 풀 종이 될 자격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수사관들이 자신들을 보낸 사람들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말해달라고 하자 요한은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사막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목소리라고 소개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수사관들이 왜 침례를 주는지 묻자 자신의 뒤에 자신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이 온다고 대답하는 내용이다.

24절은 해석상 어려움이 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사장들은 사두개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사두개파들은 세력을 잃었고 바리새파가 유대교 전체를 지배했었다. 아마도 바리새파들이 산혜드린 공회를 통해 요한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서 결정을 했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다. 만약 사두개파들이 주장했다면 19절에서 유대사람들이 보냈다고 하지 않고 대제사장들이 보냈다고 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온 수사관들이 계속하는 질문이 25절에서 이어진다. 그들은 요한에게 묻기를 그러면 어째서 침례를 주느냐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마지막 때에 나타날 모세와 같은 예언자도 아니라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침례가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침례는 부정한 이방인들이 정결함을 받고 유대교에 입교할 때나 하던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정결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으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서 조사하러 온 것이다. 또 당시 쿰란 지역에 살면서 수도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들은 에스겔 36:25절을 근거로 날마다 침례를 행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요한에게 나가 침례를 받는 것은 유대교 입장에서는 말이 안되는 것이다.

무슨 권위로 침례를 주느냐는 질문이기에 요한은 “그렇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라고 대답했어야 옳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자신을 높이 세우는 것이기에 요한은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한다. 대신 원어를 27절에서 요한은 대답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만 대답한다. 요한 뒤에 오시는 분 때문에 침례를 준다는 뜻이다. 역시 요한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있는 모습이다.

요한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자신의 뒤에 오실 그리스도만 높이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말하기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했다.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 신발끈을 푸는 일은 그 집 노예들 중에 가장 낮은 노예가 아는 일이다. 그러나 요한은 가장 천한 노예보다 자신을 더 낮춤으로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다. 제자가 스승의 신발끈을 푸는 경우는 어떤 경우에도 없다. 오직 가장 천한 노예만이 하던 일이다.

28절에서 요한복음 기록자는 이런 일이 벌어진 장소가 베다니라고 말하면서 요단강 건너편이라고 덧붙인다. 올리브산에 있는 베다니와 구별하기 위해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베다니라고 한 것이다. 요단강 건너편이란 유대인들이 살던 요단강 서편에서 바라볼 때 강 건너편 동쪽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단강 동편에는 베다니라로 알려진 지명이 없다. 베다니 대신 벳사바라로 기록한 사본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부 후대사본들 뿐이고 오래된 대부분의 사본들은 모두 베다니로 기록하고 있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요한복음 기록당시는 존재했었지만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지역이라 그 지명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어째서 침례를 주는지 물었는데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높일 것을 알기에 의도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자신은 자신의 뒤에 오실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푸는 노예가 될 자격도 없다고 대답함으로 자신은 한없이 낮추어 그리스도를 높였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잘못하면 우쭐해져서 교회 안에서 자신을 높이기 쉽다. 요한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본을 보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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