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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24:28-31

Dawn Word

누가복음 24:28-31

예수께서 나누어 주신 말씀과 빵을 통해 눈을 뜬 제자들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9. 22.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4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4:28-31 날이 저물자 두 제자들은 예수를 자기 집에서 머물고 가시라고 초청을 했는데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그제서야 눈이 열리고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말씀을 다 듣고 증거들까지 보았는데도 믿지 않는 제자들에게 어리석은 자들이고 마음에 느린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구약성경을 가지고 자신이 부활하여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설명해 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저녁 때가 되어 예수께서 두 사람과 함께 집에 들어가 식사하실 때 축사하시고 빵을 떼어줄 때에야 제자들이 알아 보았다는 내용이다.

예수께서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서 시작하여 성경 전체를 가지고 자기에 관하여 기록된 구절들을 설명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28절은 어느새 두 제자가 가려는 마을에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가까이 왔다는 말이 15절에서도 나온다. 예수께서 두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함께 동행하셨다고 했다.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다가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며 구약 성경 말씀으로 자신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수께서 두 제자들과 함께 그들의 마을에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려는 것처럼 행동하셨다고 했다. 무엇을 하려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딱 한번만 나오고 칠십인역 구약성서에서는 사무엘상 21:14절에서 다윗이 미친척하는 장면으로 한번 나온다. 예수께서 더 가려는 것처럼 연극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연극하신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지 않으셨다면 실제로 더 가시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예수께서 주도적으로 가까이 다가오셔서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만 이렇게 말씀을 다 들은 뒤에는 제자들이 주도적으로 예수님을 초청하여 맞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9절에서 제자들은 그를 못가게 말리며 말했다고 했다. 개역은 "강권하여"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만류하여" 라고 번역한 말은 옆에서 라는 말과 힘을 쓴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옆에서 힘을 써서 붙잡고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라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저녁때를 향하고 있고 날은 이미 완전히기울어졌다는 것이다. 저녁이라는 말은 본래 서쪽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저녁을 향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는 뜻일 것이다. 날이 완전히 기울었다는 말도 날이 완전히 구부러졌다는 뜻이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고 완전히 기울어진 모습이다.

고대 사회에서 날이 저물어갈 때 낮선 사람이라도 그냥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낮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아주 높은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히브리서 13:2절에서도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서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라고 했다. 이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낮선 나그네들을 대접햇는데 그들이 천사였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발달된 사회에서 낮선 이를 대접하는 경우는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도 중동의 시골 마을들을 여행하다보면 낮선 나그네를 귀한 손님처럼 맞이하는 경우를 흔히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중동 뿐만 아니라 몽고와 같은 곳의 시골을 여행하다가 그렇게 대접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적인 1960년대 한국에서도 낮선 이를 잘 대접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들이 예수님을 초청하자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머물려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30절에서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식탁 앞에 기대어 누울 때가 되었다고 했다. 새번역은 "음식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 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다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기대어 누워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 때 예수께서 빵을 가지시고 축복하신 뒤에 떼어서 저희에게 주셨다고 했다.

이 부분은 22:19절의 마지막 만찬의 장면보다는 9:15-16절의 오병이어의 기적의 장면과 비슷한 말로 되어 있다. 마지막 만찬에서는 기대어 누운 것과 빵을 들어 축복하신 것과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쓰인 말과 거의 똑같다. 빵을 들어 축복하고 나누어 주는 것은 본래 주인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손님으로 오셨으면서도 주인의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오면서 말씀을 나누어주신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상징할 수 있다.

31절은 "그러자 저희 눈이 열렸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열렸다는 말은 닫혀있던 것이 둘로 갈라져 열린다는 뜻이다. 누가복음 2:23절에서 "첫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라는 말에서도 나온다. 원어의 의미는 자궁을 처음으로 둘로 가르고 나온 수컷"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눈이 열렸다는 말도 그동안 계속 닫혀있던 눈이 둘로 갈라지고 열리는 장면을 그린 말이다. 25절에서 마음이 느린자들이라고 한 말과 비교해 본다면 그동안은 마음의 눈이 닫혀있었고 열린다 해도 졸다 깬 사람처럼 느리게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그 마음의 눈이 완전히 둘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눈이 완전히 갈라지고 열렸기에 이제 그들은 그를 완전히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로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새로운 몸을 가지셨기에 문이 닫혀있는 곳에 있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고 여기서는 몸의 움직임 없이 갑자기 떠나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몸인지 알 수 없지만 영이나 환상이 아니고 실제이면서도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와 다른 영원한 몸을 가지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자신에 관한 말씀들을 가지고 들려주신 것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시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제자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우리 역시 닫힌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 10:17절에서 믿음은 기르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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