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19-21 예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두 제자는 행함과 가르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능력있는 예언자가 된 예수를 자신들의 지도자들이 죽였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그리스도로 여겼는데 그는 벌써 사흘이나 소비했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두 사람의 제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는지 묻자 글로바라는 제자는 짜증 섞인 투로 화를 내며 당신 혼자만 예루살렘에 머물렀냐며 어떻게 최근 일어난 일을 모를 수 있느냐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두 제자들이 최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내용이다.
19절에서 예수께서는 마치 앞에서 클레오파가 말한대로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혼자 있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무슨일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예수께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인데 그는 능력있는 예언자가 되었다 라고 했다. 능력있는 예언자가 되었다는 말은 예수께서 스스로 능력있는 예언자가 되는 일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원어에는 예언자 라는 말 앞에 사람이라는 필요없는 말이 들어있다. 이는 보통 존경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예언자가 되신 분이라는 정도의 표현인 것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능력있는 예언자가 되도록 스스로 참여했는가 하면 그것은 행함과 말이다. 개역은 “말과 일”이라고 순서를 바꾸어 번역했는데 보통 다른 곳에서는 보통 말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행함이 먼저 나온다. 능력있는 예언자가 된것은 먼저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놀라운 지혜있는 말씀이다. 이 두가지로 나사렛 예수께서는 스스로 능력있는 예언자가 되는 일에 참여하셨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라는 표현이 붙어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가르치신 말씀들로 하나님 앞에서 예언자로 승인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누가만이 두 번 사용한 표현이다. 누가복음 1:6절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사가랴와 엘리자벳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다고 했는데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승인을 받았다는 뜻이다. 또 모든 백성들 앞에서도 예언자로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20절에서 두 제자는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예수를 넘겨주어 사형판결을 받게 하고 십자가에 그를 못 박았다고 했다. 통치자들이란 로마의 통치자가 아니다. 우리의 통치자들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형 판결을 받도록 넘겨준 것은 이들이 한 일 맞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은 빌라도가 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제자는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유대교 지도자들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23:21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께 죄가 없다고 했을 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5:30절에서도 누가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이라고 기록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21절은 “그러나 우리는”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였지만 그러나 우리는 소망을 걸었다는 것이다. 무엇에 소망을 걸었는가 하면 앞으로 이스라엘을 구속할 사람이라는 것에 소망을 걸었다는 것이다. 새번역은 구원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의 의미는 개역처럼 구속이라고 해야 맞다. 이는 노예생활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다. 과거 이집트의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들을 해방시켜 준 것처럼 이제 예수가 자신들을 로마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소망을 걸었다는 것이다.
21절 뒷부분은 그러나 이 모든 일과 함께 이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째라고 했다. “이 일이 있은 지 사흘째”라는 말은 예수께서 벌써 사흘이나 써버렸다 라는 뜻이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께서 살아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벌써 사흘 째라는 말은 이제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사흘이 지나면 그 영혼이 몸에서 완전히 떠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셔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까 하고 기대를 걸었는데 예수께서는 벌써 사흘이나 낭비했다며 좌절하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이스라엘의 구속은 자신들을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라던 메시야 상은 바로 다윗과 같은 왕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살아나서 자신들을 구속해줄까 하고 한가닥 희망을 남겨두었는데 이제 다 끝나간다는 것이다. 조금 있어 사흘이 지나버리면 완전히 끝난다는 것이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았고 천사가 살아났다고 했다고 했고 베드로도 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는데도 이들은 좌절해서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기대하는 부활이란 부활하신 예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대로 소집해서 특별히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를 그 능력으로 쳐부수고 왕으로 대관식을 올리는 것이다. 이들은 무덤이 비어 있었다거나 천사가 나타나서 살아났다고 하는 등의 허무맹랑한 말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이 기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어떤 말들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이 두 제자들과 같이 자신들의 정해진 생각을 따라 말씀을 듣고 판단을 한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씀만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고는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모든 다른 증거들은 다 아니라고 무시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그대로 믿고 따라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