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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24:17-18

Dawn Word

누가복음 24:17-18

질문한 예수께 짜증섞인 투로 대답한 글로바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9. 18.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4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4:17-18 예수께서 두 사람의 제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주고 받는지 묻자 글로바라는 제자는 짜증 섞인 투로 화를 내며 당신 혼자만 예루살렘에 머물렀냐며 어떻게 최근 일어난 일을 모를 수 있느냐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되어진 일들에 대해 대화하며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을 예수께서 따라잡으셔서 질문하며 함께 걸었지만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무슨 이야기 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하는 내용이다.

앞서 가던 두 제자를 따라잡은 예수께서 17절에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걸으면서 서로 주고 받은 이 말들은 무엇입니까?" 주고 받았다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누가만이 딱 한번 쓴 말이다. 이 말은 본래 공이나 어떤 물건을 서로에게 던지고 받는 것을 반복하는 장면을 뜻하는 말이다. 비유적으로 쓰여서 대화를 서로 던지고 받고 있었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그러자 두 제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멈추어섰다. 침통한 표정이라는 말은 본래 화가 났다는 말에 얼굴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마태복음 6:16절에서는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고 할 때도 쓴 말이다. 창세기 40:7에서는 요셉이 바로의 관원장에게 왜 근심 빛이 있느냐고 물을 때 쓴 말이다. 슬픈 빛보다는 침통한 표정이라는 번역이 원어의 느낌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사람은 화가 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얼굴이 굳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화가 난 감정과 슬픔이라는 감정은 그 경계선이 모호한 감정이다. 화가 났을 때 그것을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 슬픔으로 바뀌는 것이다. 제자들은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멈추어 서서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낮선 사람을 바라본 것이다.

18절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글로바라고 한다. 글로바는 요한복음 19:25절에 나오는 글로바와는 원어에서 철자가 다르다. 오늘 말씀 누가복음 24:18절의 글로바를 영어로 그대로 옮겨 쓴다면 Cleopas이고 요한복음 19:25절의 글로바는 영어로 쓴다면 Clopas이다. 요한복음의 글로바는 히브리어나 아람어식 이름이다. 반면에 Cleopas는 Cleopatros라는 그리스식 이름을 줄여서 부른 말이다. 마치 Alexander를 Alex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다. 이집트의 여왕 Cleopatra도 Cleopatros의 여자 이름이다. 클레오 라는 말은 칭찬이나 찬양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로스는 찬양 받을 조상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주던 흔한 그리스식 이름이다.

흔한 그리스식 이름이었기에 클레오파트로스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누가복음을 처음 받던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이름일 것이다. 4세기의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했는데 복음서에서 언급한 글로바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의 기록으로 오늘 말씀의 글로바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중 글로바라는 이름을 말한 이유는 누가복음을 받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었기에 이름을 소개한 것이다.

글로바라는 사람은 그에게 말했다. 원어는 "당신 혼자만 예루살렘에서 나그네로 머물렀습니까? 그래서 요즈음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되어진 일들을 알지 못합니까?" 라는 뜻이다. 이러한 말투는 슬픈 기색보다는 화가난 굳은 표정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예루살렘에 머문다는 말에서 머문다는 말은 집 옆에 산다는 뜻으로 그곳 주민이 아닌 잠시 방문한 떠돌이 나그네라는 뜻이다. 이는 화가 나서 아무도 없는 텅빈 예루살렘에 당신 혼자만 방문한 나그네였냐고 비꼬는 투로 하는 말이다.

이들의 이러한 말은 이들이 기대하며 따르던 예수께서 비참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낙심하고 분노해서 하는 말이다. 21절에서 이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 라는 말에서 이들의 기대를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살아난다고 하셨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았고 번개 같은 빛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베드로도 가서 빈무덤을 확인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들의 분노와 낙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듯한 낮선사람이 말을 걸자 이처럼 짜증과 분노가 섞인 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자기들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그 모든 가르침은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걸러서 듣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왕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들 방식으로 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전통 종교와 문화와 생각들이 기독교와 합쳐져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어서 오늘날 복을 비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기독교도 역시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뭐라 하시는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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