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42-43 다른 죄수는 예수께서 예수님의 나라의 왕으로 오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당장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매달린 죄수 하나가 예수를 모독하는 말을 했지만 다른 죄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며 책망을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다른 죄수가 예수께서 그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자 예수께서는 그도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42절에서 두번째 죄수는 예수께 말하기를 "나를 기억해 주소서 당신께서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왕이 되셨을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뜻이다. 십자가 상에서 죽어가면서 예수님을 변호한 자신의 공을 잊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이는 마치 어려움에 처한 왕이 될 사람을 잠시 숨겨주고 보호해 준 뒤 왕이 되시면 자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부탁한 것과도 같다. 이 죄수는 마치 창세기 40:14절에서 감옥에 있던 요셉이 같은 죄수로 있던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준 뒤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과도 같다.
개역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은 "주님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라고 번역했다. UBS 원어 성경은 "당신께서 당신의 나라 안으로 오실 때" 이라는 의미로 가정법이다. 사본들도 "당신의 나라 안으로 오실 때" 라고 기록된 것과 "당신의 나라 안에 오실 때" 라고 된 것이 있다. 3세기 초 파피루스 사본 하나와 4세기 대문자 사본 하나에는 "당신의 나라 안으로 오실 때" 라고 되어있다. 이는 당신의 나라 안을 향하여 오실 때라는 뜻이기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오고 계시는 장면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4-5세기 대문자 사본들과 거의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당신의 나라 안으로 오실 때 라고 했다.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향햐여 오고 계시는 장면보다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임재하시는 모습으로 기록했다. 그 의미는 둘 다 단순히 예수께서 죽으셔서 하나님 우편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예수께서 왕으로 재림하시는 장면이나 재림하신 장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5세기 대문자 사본인 Bazae 사본에는 "당신이 오실 그날에" 라고 되어있어 그러한 의미를 분명하게 해 준다.
이 죄수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장차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왕으로 재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예수께서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왕으로 취임하시면서 자신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하는 말이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죄수의 말이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예수께서 왕으로 재림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는 말이라고 해석한다.
43절에서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다. 낙원이라는 말은 복음서에서는 여기에 딱 한번 나온다. 고린도후서 12:4절에서는 바울도 낙원에 이끌려 간 사람에 대해 말한다.유대교 문서에서 게헨나 또는 지옥에 반대되는 말로 나온다. 이는 의인들이 죽은 후에 또는 부활한 후에 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장차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만 하나님 우편으로 가신다는 뜻인가? 이 죄수는 예수께서 그의 나라에 오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는 뜻이고 이미 왕의 사면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이 죄수가 요청한 것 이상으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장차 재림하실 때까지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너는 지금부터 죄사함 받고 의인이 되어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죄수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로마군대들과 게릴라전을 펼치며 싸운 독립투사들의 지도자일 것이다. 이 사람은 바라바가 다윗과 같은 왕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로마 군대들과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죄수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보고 그 생각과 믿음이 바뀐 것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바꾸었을까? 본인은 23:34절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죽이라고 고소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을 보고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기도이기 때문에 이 죄수는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바라바를 따르던 무리에서 떠나서 예수께로 전향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 편에서 다른 죄수를 책망하며 예수님을 변호했을 것이다.
구원이란 많은 착한 일을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죄수처럼 세상을 따라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예수님께로 나옴으로 받는 것이다. 단순히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 편으로 돌아서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 편으로 돌아섰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예수께서는 위선자, 즉 연극배우라며 책망하셨다. 이 사람처럼 진정으로 하나님 편으로 돌아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