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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50:4-9

Dawn Word

이사야 50:4-9

당당히 선포하고 고난에 당당히 맞서는 하나님의 종

2018. 12. 11. · 안정섭 목사

이사야 50:4-9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에게 말씀을 주시고 선포하게 하실 때 세상으로부터 육체적 고통과 모욕을 당하겠지만 하나님의 종은 당당히 고난과 맞서신다. 하나님께서 곁에 계시며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하: 핍박에 당당히 맞서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 당당하게 전하고 당당하게 견디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멀리 가버린 것이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없어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에 고난을 견디며 전한다는 것이다.

50:1-3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4절은 이제 하나님의 종이 말하는 내용이다.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하게 하셔서" 라는 말은 "주님께서 내게 배운 자의 혀를 주셔서" 라는 뜻이다. 배운 자란 어떤 사람에게 배운 제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르치신 이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배운 것을 그대로 말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것으로 무엇을 하게 하셨는가?

그것은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는 것이다. 지친 사람이란 구부러진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이 정말 지치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구부러진 채 축 늘어져 있기 마련이다. 구부러졌다는 말의 반대는 격려한다는 말인데 이는 계속 일어서 있게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종은 지쳐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말씀으로 일어서게 하신다는 것이다.

4절 뒷부분은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제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라고 했다. 앞에서 지친 사람을 말씀으로 일으켜 세우게 하는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에게 말씀을 주셔서 깨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 듣는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순종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네, 잘 알았습니다" 라며 그대로 순종하신다는 뜻이다. 알아듣는다는 말이 순종을 뜻한다는 것은 5절을 보아도 알 수 있다.

5절은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라고 했다. 귀를 열어 주셔서 잘 알아듣고 순종할 마음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말대꾸하며 거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대꾸하고 삿대질하며 거역한 뒤에는 등을 홱 돌이고 돌아서서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5절의 이러한 내용을 볼 때도 4절의 알아듣는다는 말은 듣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6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종이 사람들에게 받는 핍박이다. 먼저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라고 했다.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등을 때리는데 말없이 매를 맞는 모습이다. 힘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전하면 이처럼 매를 맞기 마련이다. 매를 피하는 쉬운 방법은 하나님 말씀을 바꾸어 듣기 좋은 축복의 말씀을 전하면 된다. 그러면 매를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받은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전했기에 매를 맞은 것이다. 등을 맡긴 것은 때리는 자들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또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라는 말씀은 조롱하는 투로 수염을 잡아 뜯는 모습이다. 이는 육체적 고통도 있지만 이는 주로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것이다. 또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라고 했다. 역시 말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육체적인 고통의 강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모욕을 당하는 것에 대한 정신적인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말없이 순종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행했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7절은 "주 하나님게서 나를 도우시니" 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돕고 계시기에 이러헌 고통과 모욕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이 상하지 않았고" 라고 한 것이다. 이는 전혀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라고 했다. 원어는 "나는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세워 두었다" 라는 뜻이다. 부싯돌이란 수정만큼 단단한 돌이다. 쇠붙이를 부싯돌에 쳐서 불을 붙이는 것이 부싯돌이다. 그렇게 심한 매질을 당하고 모욕을 당해도 부싯돌처럼 전혀 손상이 없이 그대로 얼굴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8절은 "나를 의롭게 하시는 분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종이 무죄라는 것을 밝혀주실 하나님이 손에 닿을만큼 공간적으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종을 법정에 고소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고소를 당하고 소환장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함께 법정에 나서보자" 라고 한것이다.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라는 말은 도대체 누가 나를 법정에 고소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라"는 말은 "가까이 오게 하라" 는 뜻이다" 도대체 누가 나를 고소했는지 한번 얼굴좀 보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 계시며 옳다고 해 주시는데도 고소한 그 바보가 누구인지 얼굴좀 보자는 뜻이다.

9절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 하나님게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라는 말은 앞으로 도와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돕고 계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도우신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감히 나에게 죄를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다시 "보라!" 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대적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모두 옷처럼 헤어지고 좀에게 먹힐 것이다" 라고 했다. 옷처럼 닳아서 누더기가 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좀이 먹어서 구멍이 뽕뽕 뚫린다는 것이다.

옷이 떨어지고 좀 먹는 그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그림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옷이 닳아 떨어지듯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못쓰게 되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다. 좀이 먹어 못쓰게 되는 옷처럼 쓸모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종이 전하는 말씀은 부싯돌처럼 변함이 없고 영원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받는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말씀은 42:1-9절과 49:1-7절에서도 나왔다. 42:1-9절에서는 하나님의 종은 세상의 왕들처럼 힘으로 다스리지 않고 연약한 자들을 세워주시며 이방의 빛이 되신다 했다. 49:1-9절은 하나님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오게 하신다는 내용이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 세번째로 그렇게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세상의 힘있는 자들에게 고통과 수치를 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전혀 수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우리 주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서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받을 핍박이 두려워 피하려 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좋게 바꾸어 전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위해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주님도 우리를 모르신다고 하신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고 부싯돌처럼 버텨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항상 우리의 곁에 계시며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당히 선포하고 고통과 모욕을 당당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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