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32-33 예수께서는 다른 두 명의 죄수들과 함께 끌려가셔서 해골이라는 곳에서 다른 두 죄수들을 좌우편에 두고 그 가운데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는 자식이 없는 여인이 차리리 더 복되다고 할 것이라 하시며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산과 언덕이 무너져 자신들을 덮어달라고 한다고 하셨다. 푸른 나무도 그렇게 태우셨는데 마른 나무들이야 얼마나 더 잘 태우시겠느냐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다른 두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시는 내용이다.
32절은 다른 두 죄수들도 예수와 함께 처형 당하기 위해 끌려가고 있었다고 했다. 끌려간다는 말은 계속해서 끌려가는 죄수 행렬의 퍼레이드를 동영상처럼 나타낸 말이다. 죄수 두명과 함께 끌려갔다는 것은 23:37절에서 무법자들과 한패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두 죄수는 로마제국에 항거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바라바를 따르던 지도자들이다. 이제 바라바 대신 예수께서 그들의 우두머리라는 죄목으로 그들과 함께 쳐형되시는 것이다. 처형시킨다는 말은 본래 높이 들어올린다는 뜻인데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마태복음에 한번 히브리서에 한번 나올 뿐이다. 그러나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2번 사도행전에서 20번을 썼다. 이는 누가의 특징적인 표현이다.
33절은 그리고 해골이라는 장소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다른 죄수들도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쪽에 달았다고 했다. 다른 복음서들에는 골고다 라고 하고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해골이라는 뜻이라고 했지만 누가는 해골이라고만 했다. 예수님을 가운데에 두고 다른 두 죄수를 좌우편에 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이 십자가라는 보좌에 앉았다는 것을 조롱하려는 것이다. 마태복음 20:20-21절에서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와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22절에서 예수께서는 너희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일반적인 십자가에는 나무로 된 작은 선반이 있어 그곳에 엉덩이를 걸치게 했다. 그것은 편안하게 앉도록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연장시켜 고통의시간을 늘리려는 장치였다. 두팔과 다리에 못이 박히고 이 작고 불편한 나무에 엉덩이를 겨우 걸치는 것이다. 그러나 걸터 앉을만큼 큰 나무가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엉덩이는 미끄러져 내렸을 것이고 그 때마다 찢기는 고통이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러한 고통은 힘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반복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께서 앉으신다고 하신 보좌는 바로 십자가였던 것이다. 세배대의어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구한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로마총독에게는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려고 하는 왕이라고 고소한 것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뜻으로 다른 독립투사들 두명을 보좌의 좌우편에 앉게 하고 예수님은 그 가운데의 보좌에 앉은 형상으로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이다. 죄가 없으신 분이 사형수 취급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