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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누가복음 › 23:29-31

Dawn Word

누가복음 23:29-31

예루살렘은 심판날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하시는 예수님

다시 찾은 어린 양과 집으로 가는 길 · 누가복음 15장

2023. 8. 31. · 안정섭 목사 · 누가복음 23장 강해 설교

누가복음 23:29-31 예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는 자식이 없는 여인이 차리리 더 복되다고 할 것이라 하시며 사람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산과 언덕이 무너져 자신들을 덮어달라고 한다고 하셨다. 푸른 나무도 그렇게 태우셨는데 마른 나무들이야 얼마나 더 잘 태우시겠느냐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 끌려가시려 하실 때 군인들은 구레네 출신 시몬을 잡아 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뒤를 따르게 했고 많은 백성들과 여인들이 슬퍼하며 예수의 뒤를 따랐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왜 그렇게 너희와 너희 자손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신 내용이다.

29절은 독립된 문장이 아니고 28절과 연결된 한 문장이다."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왜 그렇게 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개역은 "보라! 그 날이 이르면" 이라고 번역해서 조건절인 것처럼 번역했다. 새번역은 "날들이 올 것이다" 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했다.하지만 원어에서는 현재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어에서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보아라! 그 날들이 오고 있다" 라고 번역해야 옳다. 현재 오고 있는 중이라는 뜻으로 중계방송을 하듯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어서 그 날들 안에서 사람들이 말하길 "복되도다! 아이를 배지 못하는 여인과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배와 먹여보지 못한 젖이여!"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54:1절에서도 "잉태하지 못하며 생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이사야에서는 자녀도 없고 남편도 없는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에게 많은 자식들이 돌아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할 것이니 차라리 자녀가 없는 여자가 낫다는 뜻이다. 보통 때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은 욕을 먹지만 그러한 세상 질서가 완전히 뒤집힌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예루살렘의 자녀들은 완전히 다 망하는 날이 오고 있으니 차라리 없었던 편이 더 낫다고 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예루살렘의 자녀들은 주님 재림하실 날에 완전히 멸망하게 될 거짓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모델이다.

30절은 그 때에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산들에게는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라고 말하고 언덕들에게는 "우리를 덮어 버려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호세아 10:8절에도 나오는데 호세아에서는 반대로 산들보고 덮으라 하고 언덕들은 무너지라고 했다.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또 계시록 6:16절에서는 산과 바위에게 말하기를 자신들에게 무너져 내려 자신들을 덮어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멸망을 본보기로 삼아 마지막 심판날의 고통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지막 심판날에 겪을 고통이 너무도 엄청나서 그러한 고통을 겪는 것보다 차라리 산이 무너져 내리고 언덕들이 자신들을 덮어 완전히 묻어주면 좋겠다고 한다는 뜻이다.

31절은 만약 나무가 푸를 때에도 이와같이 하신다면 나무가 마를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새번역은 계절이라는 말을 넣어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번역했지만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푸른 나무 안에서"와 "마른 나무 안에서" 이다. 이는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날을 불로 태워버리는 그림언어로 전달하고 계시는 것이다. 푸른 나무는 불에 잘 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른 나무들도 다 태워버리신다면 마른 나무들은 얼마나 더 잘 태우시겠느냐는 뜻이다.

이러한 예언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AD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대조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죄없는 그의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로마를 통해 심판하실 죄인들인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내리시겠느냐는 의미로 해석한다.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죄없는 예수와 예수를 죽게한 죄인들로 적용하고 또 예수로 대표되는 생명의 충만함과 생명이 없는 유대교를 대조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앞에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을 모형으로 삼아 종말론적 재림과 심판의 날을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푸른 나무는 단순히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고 마른 나무는 예루살렘 멸망만을 의미한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예루살렘 멸망이 대조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루살렘 멸망은 죄인들에게 임할 무서운 종말론적 심판의 모형인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따라 믿었던 유대인들을 심판한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적 심판은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초점은 하나님을 자기들 멋대로 믿으며 하나님을 이용하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이요 실질적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일 것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실질적인 우상숭배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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