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10-12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온 힘을 다해 예수를 고소했지만 헤롯은 그러한 고소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옷을 입혀 조롱하면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이전 말씀에서 헤롯은 예수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구경하려고 여러가지로 질문을 했지만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공회원들이 예수를 맹렬하게 고소하고 헤롯은 조롱을 해서 빌라도에게 돌려 보내는 장면이다.
공회원들이 심각하게 고소하고 있는데도 헤롯은 신기한 구경거리나 만난듯 예수를 대했다. 그러자 10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맹렬하게 고발하면서 서 있었다고 했다. 새번역에서 "맹렬하게"로 번역하고 개역은 "힘써"라고 번역한 말은 "좋다" 또는 "잘" 이라는 뜻의 접두어에 뻗는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팔을 쫙 뻗고 온 힘 다해 미는 그림으로 볼 수 있는 말이다. 같은 말이 사도행전 18:28절에서 바울이 성경으로 논증하여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압도했다고 할 때도 쓰였다. 산헤드리니 공회의 주된 구성원인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죽음에 몰아 넣으려고 팔을 뻗치고 온 힘 다해 미는 것처럼 온 힘 다해 고소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헤롯은 이러한 고소에도 전혀 반응이 없다. 헤롯은 자신의 호위병들과 함께 모욕하며 조롱하였다고 했기 때문이다. 새번역에서 모욕한다고 번역한 말은 본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 치워버린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신여긴다는 말이나 경멸한다는 말이 더 잘 맞는 말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조롱이나 희롱으로 번역된 말이다. 이 말은 본래 많은 구경꾼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에 세워놓고 춤추거나 놀이를 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신여긴다는 말은 예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멸시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이라면 조롱한다는 말은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뜻이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빛나는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는 말이 이러한 구경거리로 만들었다는 원어의 본 의미를 잘 설명해 준다. 빛나는 옷이란 말을 새번역은 화려한 옷이라고 번역했는데 원어가 갖고 있는 본래의 그림이 감소된 느낌이 드는 번역이다. 이는 아주 값비싼 귀한 옷이 햇빛을 받아 빛이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부자나 천사를 나타내는 세마포로 만든 밝은 빛의 옷을 묘사한 것으로 색깔은 안나와 있지만 흰색 망또일 것이라고 말한다. 원어 만으로는 흰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옷은 왕을 나타내는 옷이라는 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헤롯이 눈부시게 빛나는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낸 것을 빌라도는 15절에서 예수가 죄가 없기에 돌려보낸 선언으로 해석한 것이다. 만약 눈부시게 빛나는 옷이 흰색이었다면 왕이라는 상징 이외에도 무죄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12절에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는데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헤롯이나 빌라도가 친구가 되었다는 말은 서로 의견이 맞았다는 뜻이다. 우리 말로 의역하자면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죽이란 옷이나 양말 따위를 열개씩 묶어놓은 것으로 각자가 세어 놓은 것이 딱딱 맞는다는 뜻이다.
무엇에 대해 그날에는 그렇게 헤롯과 빌라도가 서로 의기투합이 되었을까? 그것은 15절을 볼 때도 분명히 예수가 무죄라는 것이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시기심으로 죽이려고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반란군 지도자라고 고소한 죄목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헤롯은 예수의 행적에 대해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기에 반란군 지도자라는 고소는 터무니 없다는 것이다. 빌라도 역시 심문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이어지는 13-15절과 연결해서 보아도 이 두 사람은 예수가 무죄라는 것에 서로 의견이 같았다는 것을 친구가 되었다고 한 것이다.
죄없는 예수님을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반란군 지도자로 고소한 것은 터무니 없는 거짓이라는 것이 이방인 통치자와 유대인 통치자를 통해서도 증명이 되었다. 특별히 통치자 두 사람이 증인으로 서서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는 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주인이 없는 사이에 주인 대신 종들을 맡아 관리해 달라고 일을 맡겼는데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그 상속자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냈는데도 죽이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에서 여러가지 일을 맡다 보면 주인이 되기 쉽다. 날마다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누구나 다 예수님 대신 교회의 주인이 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