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8-9 헤롯은 예수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구경하려고 여러가지로 질문을 했지만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이전 말씀에서 공회원들은 예수가 모든 유다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군으로 삼아 이끌고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지만 빌라도는 전혀 믿지 않고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에게로 떠넘겼다. 이어지는 말씀은 헤롯이 예수를 심문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내용이다.
8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 의미가 잘 연결이 안되기에 영어 번역들은 "now" 나 "when"으로 번역했고 한글 번역들은 모두 생략했다. 빌라도가 예수를 헤롯에게로 보냈기에 8절은 "그러나 헤롯은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라고 했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무죄한 사람의 피를 자기 손에 묻히기 싫어서 헤롯이 재판하도록 떠넘긴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재판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헤롯은 예수가 유죄냐 무죄냐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보자마자 대단히 기뻐했다고 누가는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들은 것 때문에 오래 전부터 예수를 보고싶어 했다는 것이다. 헤롯은 오래 전부터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셨던 기적들에 대해 소문으로 들어왔었기에 그 소문이 사실인지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바로 이어서 그로부터 되어지는 어떤 기적을 보고 싶어했다고 했다. 헤롯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의 신기한 구경거리로 보고싶어 했다는 것이다.
바로 앞에 나오는 이방인 통치자인 빌라도와 하나님을 믿는 나라의 한 지역을 다스리던 통치자인 헤롯이 대조된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더럽고 악한 이방인은 예수가 죄가 없다고 올바르게 판단을 했다. 그러나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유대인 통치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행한 기적들을 유랑극단의 서커스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에스겔 7장에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악한 이방인 지도자인 느브갓네살의 지팡이로 심판하신다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을 믿는다던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방 사람보다 더 악한 것이다.
9절은 그러나 헤롯이 많은 말로 예수께 물었지만 그러나 예수께서는 헤롯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세차례의 심문 중에 오직 산혜드린 공회 앞에서만 자신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산헤드린 공회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대표하는 기관이기에 예수께서 답변하신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이 듣고 회개하여 장차 임할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방인 통치자인 빌라도에게는 "그대가 그렇게 말하고 있소" 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이방인 통치자보다 더 사악한 유대인 통치자에게는 아무 대답도 안하셨다. 예수께서는 기도로 이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정하셨기에 이사야 53:7절의 예언대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아무 말도 안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침묵이 그들의 고소들이 대답할 가치 조차도 없는 것으로 경멸하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최선이다.
오늘 말씀에는 이방인 통치자인 빌라도와 유대인 통치자인 헤롯이 대조가 된다. 헤롯의 부친인 대헤롯은 본래 이두매 사람이지만 완전한 유대인으로 전향을 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까지 지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헤롯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도 스스로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경멸하던 이방인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라는 것을 알고 무죄선고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나온다. 반대로 유대인인 헤롯이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삼으려는 것은 하나님 조차도 경멸하는 것이다.
이들 둘과 대조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그러한 경박한 사악함에는 아무 대답도 안하시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보다는 자기 중심적으로 믿으면서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을 수 있다. 그런 때에 우리도 논쟁하며 싸우기 보다는 입을 다물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러한 억울한 고난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