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61-62 베드로는 세번 부인한 뒤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비통하게 울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조금 지난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가 그들과 한패라고 하자 아니라고 했고 한 시간쯤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강력히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세번째 부인을 하자 닭이 울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비통하게 우는 장면이다.
61절은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바라보셨다고 했다. 이 말은 다른 복음에는 없기에 누가가 극적 효과를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내용이기에 누가가 또 다른 자료를 보고 베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 서구의 학자들은 대부분 누가가 마가복음을 보고 어떻게 바꾸고 편집했는지를 설명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다가 설명이 안되는 내용이 나오면 다다른 자료를 보고 썼다고 하거나 아니면 누가가 마음대로 지어낸 창작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서구의 학자들은 다시 재현될 수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있을 수 없는 기적들이 마태, 마가, 누가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의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들이 실제 있었던 일을 쓴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보고 베꼈을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기록들은 실제 목격자들이 같은 내용을 보고 서로 다르게 증언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그렇게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간단히 해결된다.
또 어떤 이는 베드로는 마당에 있고 예수께서는 안에 있었기에 베드로가 예수님를 부인할 때 예수께서 그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문이나 창문을 통해서 볼 수는 있었겠지만 들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누가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안나스의 집에서부터 옮겨지는 과정에 있었거나 아니면 예수님 역시 마당에서 잡혀있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예수께서 마당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발코니에 갇혀 있었든지 아니면 방 안에서 내다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안나스에게서 가야바에게로 이송되는 길에 지나면서 볼 수 있었을 것이라 하며 그는 베드로를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쉬운 설명은 높은 사람들이 안에서 토론하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 마당에 잡혀 있었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복음서는 본인이 직접 목격했던 것을 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구두로 증언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목격자들이 이렇게 보고 들었다고 증거하고 있는데 이천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는 지식인들이 거짓말이라며 말도 안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다. 특별히 복음서는 그 모든 상황을 보여주며 설명한 다큐멘타리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만 증거하고 있는 것이기에 건너 뛰거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누가도 누가복음 앞부분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수집해서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기에 구차하게 설명하며 누가가 조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리석은 것이다.
주께서는 분명히 베드로를 돌아보셨고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주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했다. 마가는 주의 말씀이라는 말에서 말씀을 "레마" 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누가는 "레마토스"라고 기록했다. 보고 베꼈다면 같은 말을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없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새벽은 날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 하루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기에 오늘이라고 한 것이다.
62절은 그래서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다고 했다. 마가는 같은 내용에 대해 엎드려서 울었다고 기록했다. 이는 증인들의 구두증언을 기록한 것이기에 이처럼 서로 다른 것이다. 몇몇 후대의 소문자 사본들 중에는 62절이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몇몇 사본들은 마태복음 26:75절 끝부분과 같기에 후대에 마태복음을 보고 베낀 것으로 잘못 판단한 필사자들이 삭제했거나 62절 첫단어인 "그리고" 라는 단어가 63절의 첫단어와 똑같기에 실수로 건너뛴 것이다. 오래되고 권위있는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모두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실수로 얼떨결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다가 점점 더 강하게 부인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유다와 다른 점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비통하게 울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수를 하더라도 참고 기다리신다. 그러다가 우리가 깨닫고 회개하면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 나중에 회개가 아닌 때늦은 후회를 한다면 우리는 유다처럼 망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