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47-4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유다가 무리들을 이끌고 예수께 다가와 입맞춤을 하려 하자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입맞춤으로 자신을 넘기려 하느냐고 유다에게 질문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기도로부터 일어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제자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시고는 깨우시며 시험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유다가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와 예수께 입맞춤으로 잡으라는 신호를 하는 장면이다.
47절은 "아직도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실 때" 라는 말로 시험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내용과 연결이 된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제자들의 능력으로는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셨을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보라!" 라는 말로 놀라운 구경거리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린다.
그 구경거리는 한 무리들과 유다라고 불리우는 열 두 제자들 중 하나인 사람을 보라는 것이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성전 경비병들일 것이다. 유다는 그 무리들의 앞에서 무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예수께서 습관적으로 기도하던 곳이 어디인지는 유다만 알고 있기에 성전 경비병들 앞에서 그들의 길 안내를 하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이어서 그가 예수께 입맞춤을 하려고 다가왔다고 했다. 예수님의 뒤에는 제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제 유다는 예수께 입맞춤을 할 만큼 가까이 다가왔기에 예수님과 유다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 유다의 뒤에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들이 있었다. 그렇게 제자들이 뒤에 있는 상태에서 예수께서 성전 경비병들이 뒤에 두고 있는 유다를 코 앞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다.
15:1절에서는 예수께 가까이 올 수 없는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왔다고 했다. 말씀 듣는 자리에 나갈 수 없던 세리와 죄인들은 영적인 소경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관해 눈을 뜨길 원했던 것이다. 또 18:40절에서는 소경이 눈을 뜨길 원하며 예수께 가까이 왔다고 했다. 소경은 실제로 눈을 뜨고 싶어 예수께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유다가 예수께 다가오는 장면은 이러한 사람들과 대조가 된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다는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깨달았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떠나가서 무리들을 데리고 예수께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가장 먼저 사탄의 시험 안으로 걸어들어간 사람이 유다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다 유다처럼 된다는 것이다.
개역은 47절에 있어야 할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하는지라"라는 말을 48절 앞부분에 두었다. 하지만 원어에서 48절은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유다야!" 라고 부르셨다. 바로 뒤에는 원어에서 "입맞춤으로"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온다. 본래 원어의 일반적인 어순에 따르면 48절 맨 뒤에 오는 것이 맞다. 이는 특별히 "입맞춤으로" 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다. 입맞춤으로 네가 나를 넘기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하는 입맞춤은 존경의 표시이다. 그러나 유다는 거짓으로 존경을 표시하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하던 세상 영광이 물거품이 되자 슬픔에 잠긴채 잠을 잤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덮칠 것을 미리 알았다. 그래서 유다는 자신이 예수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팔아넘긴 것이다. 유다는 가장 먼저 사탄의 시험 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9:23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다. 자신의 소원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면 좋은 일이겠지만 사람의 욕심은 항상 예외없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자기 욕심을 간직한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것을 이루도록 기도하는 것은 사탄의 시험 안으로 유다처럼 걸어들어가는 길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팔아넘겨 자신의 안위를 얻으려는 것이기에 유다와 같은 배신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