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34-36 예수께서는 세상에 짓눌려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없게 되면 갑자기 온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이 덮칠 것이니 그러한 것 다 버리고 항상 깨어 하나님께 기도하여 장차 임할 심판을 피하고 주님 앞에 서도록 하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무화과 나무가 툭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앞에서 말씀하신 징조들을 보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며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제자들이 세상에 짓눌려 준비없이 살다가 갑자기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34절은 그러나 너희는 조심하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님 말씀은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이지만 너희는 조심하라는 것이다. 마가복움 13:33절에서 조심하라는 말은 잘 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조심하라는 말의 본 뜻은 앞을 향하여 갖고 있으라는 뜻이다. 이는 중요한 물건을 앞에 들고 조심해서 운반하는 그림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잘 지켜보라는 말은 잘 감시하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조심하라는 말은 아주 조심스럽게 행하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운반하듯 조심스럽게 살아야하는가 하면 너희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개역에서는 마음이 둔하여진다고 번역했는데 원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심장이 무거운 것에 짓눌린다는 뜻이다. 칠십인역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7:14절에서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라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따라서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어 새로운 생각과 지식이 잘 들어가야 하는데 짓눌려있어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큰 이민 가방이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납작해진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러한 심장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지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세가지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세가지에 의해 그렇게 심장이 짓눌려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지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 세가지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에 대한 걱정이다. 성경에서 이처럼 세가지가 나오면 항상 예외없이 점층법이나 점강법으로 그 의미를 점점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에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인다. 특별히 마지막의 세상살이에 대한 걱정이라는 말이 방탕함과 술취함과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영어 번역들은 대부분 방탕함이라는 단어를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리는 방탕한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Thayer's 그리스어 사전은 이 단어가 본래 머리라는 말과 잃어버린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머리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이는 술취함 그자체보다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 뒤의 효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Liddle & Scott 그리스어 사전도 숙취로 인한 두통으로 설명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너무 마신 다음에 머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두번째 나오는 술취함이라는 말은 아예 술독에 빠져있거나 술에 쩔어 살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방탕함이 가끔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정신을 못차릴 때가 있다는 뜻이라면 술취함은 늘 그렇게 술에 취해 살고 있다는 뜻이기에 방탕함보다는 술취함이 더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늘 술을 마셔서 술에 취해 살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라도 술이 깨어 맑은 정신일 때가 잠시라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세번째 나온 생활의 염려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들이다. 고대의 서민들은 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가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심각한 것이 생활에 대한 염려이다. 늘 근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탕이라는 말은 숙취를 뜻한다. 방탕과 술취함은 죄악된 세상의 유혹에 취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유로 제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세가지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방탕함이란 가끔 죄악된 세상에 빠져 정신을 못차릴 때가 있는 것이고 술취함이란 습관적으로 죄악된 세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다. 생활에 대한 염려는 항상 죄악된 세상에 빠져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그 심장이 짓눌려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그 심장에 담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원어에서는 덫과 같이 임한다는 말이 35절에 나온다. 만약 그렇게 세상에 심장이 짓눌린채 살아간다면 그 날이 덫과 같이 갑자기 너희 위에 덥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세상에 빠져 살지 말고 예수님 말씀을 앞에 잘 받들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덫이 갑자기 확 덮치듯 주님의 재림의 날이 모든 땅의 얼굴 위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 위에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36절은 항상 간구하면서 깨어있으라는 말로 시작한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본래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역시 실제로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대로 세상 근심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그런 것들 다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그 결과 강한 힘을 가져야 하는데 두가지를 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첫째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장차 올 모든 일들은 믿음없이 세상에 빠져 살아가다가 갑자기 주께서 재림하셔서 받을 모든 심판이다. 그러한 두려운 심판에서 탈출할 힘을 갖추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그 날에 인자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갖추라는 것이다.
믿는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쾌락이나 근심에 짓눌려 하나님 말씀을 간직할 공간이 우리 마음에 없게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세상 쾌락이나 근심 걱정들은 다 내던져 버리고 대신에 하나님께 맡기고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고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늘 간직해야 할 것은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