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9-12 예수께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두고 백성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포도원을 심고 농부들에게 세로 준 뒤 오랜 시간이 지나 종들을 보내어 세를 받으려 했지만 농부들은 세를 내기를 거부했다고 말씀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요한의 침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할 수 도 없어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자 예수께서도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며 논쟁을 피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산혜드린 공회원들을 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 빗대어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내용이다.
9절은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 시각하셨다는 말로 시작한다. 바로 앞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논쟁하신 내용이 나오기에 이제 예수님의 대화 상대가 바뀐 것이다. 그러나 산혜드린 공회원들도 역시 백성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주된 청중을 바꾼 것 뿐이고 산혜드린 공회원들도 백성들 뒷편에서 구경하며 감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준 뒤 아주 오랜시간 외국으로 떠나 있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땅 대부분이 로마 귀족들의 소유였던 것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시 로마의 귀족들이 와서 포도원을 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로 준 뒤 로마로 돌아가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가끔 돌아와서 포도원을 살피고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주인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했기에 농부들은 이상하다 생각하다가 주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농부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같은 이스라엘 지도자를 나타내는 것이다.
10절은 "때가 되어서"라는 말로 시작한다. 레위기 19:23-25절을 보면 4년째 해에 열리는 포도는 거룩한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부터 먹도록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오랜 시간은 최소한 5년 이상은 된 것이다. 포도원 주인은 종을 보내며 포도원 소출 중에 일부를 그 종에게 주라고 했다. 그러나 농부들은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다. 어떤 이는 이 기간동안 소출이 없거나 적었기에 포도원 주인이 그 품삯을 보상해 줬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에 저항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1세기 로마의 정치가이며 작가인 Pliny가 Paulinus에게 쓴 편지를 보면 소출의 양을 확인하고 적을 경우는 세를 감면해 주었는데도 농부들이 자기 땅이 아닌데도 세를 내지 않고 마치 자기들 것처럼 그것으로 낭비하며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세를 줘야 한다고 쓴 내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나무를 처음 심었기에 소출이 적은데도 무조건 세를 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라는 말은 5년 이상이 지나 소출이 많았는데도 한동안 그동안 품삯을 보전해 주기 위해 세를 걷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의 초점은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소출이 많이 생겨 세를 내야할 때가 되어 종을 보냈는데도 주지않고 매만 줘서 빈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주인이 그동안 품삯을 주지 않아 화가 나서 종을 때려서 보내며 저항했다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만약 정당한 품삯을 요구하며 종을 때려서 보냈다면 그 종이 가서 분명히 소작인들이 소출이 없는 동안 일한 품삯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분명히 듣고 세를 면제해주었어야 옳다. 그런데 주인은 매를 맞고 돌아온 종을 보고 또 다른 종을 보냈다고 11절은 말하고 있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
11절에서 소작인들은 때릴 뿐만 아니라 모욕까지 했다. 12절에서 세번째 종을 보냈을 때는 이번에는 상처를 입해 내어쫓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만 때려 보냈는데 그 다음에는 모욕까지 하며 매를 때려 보냈고 마지막에는 얼마나 많이 때렸는지 부상까지 입혀 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을 보면 소작인들은 소출이 없는 기간에 품삯을 받지못했다고 저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이라는 말은 주인이 세를 받으러 올 때가 지났는데도 종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 모든 소출을 다 취하여 마치 주인인 것처럼 낭비하며 오랫동안 살았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주인은 죽었다 생각하고 그렇게 주인행세를 했을 것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지도자들엑 맡겼는데도 그 지도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했다는 뜻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노릇하며 백성들을 다스렸고 자신들이 하나님게서 받을 영광까지 다 가로챘다는 것을 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도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