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와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요한의 침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 질문하심으로 대응하섰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며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뒤에 그곳에서 며칠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셔서 사람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했을 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모였지만 죽일 방도를 찾지 못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 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묻자 예수께서 요한의 침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아닌지 물으시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그리고 날들 가운데 한 날이 되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누가만이 사용한 표현인데 새로운 내용이 시작된다는 신호로 사용했다(5:17; 8:22). 그러나 여기서는 19:47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내용이 앞부분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19:47절에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는데 그 중에 한 날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파하고 계셨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함께 왔다고 했다. 여기서 왔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표면위에 섰다"는 뜻으로 복음서는 누가만이 사용한 말이다. 가까이 다가왔고 이미 같은 표면 위에 서 있다는 뜻이다. 이는 주로 어떤 내용을 일방적으로 알리거나 적대감을 가지고 따지기 위해 가까이 다가와 같은 표면 위에 서 있는 장면을 나타낼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마태복음 21:23절에 보면 마태는 "그에게로 전진해왔다" 라는 부정과거 동사로 기록했다. 반면에 마가복음 11:27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오고 있다" 라고 현재형 동사와 "향하여" 라는 전치사로 기록했다. 같은 장면을 증언하면서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 같은 내용을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기록한 것은 같은 자료를 보고 각자가 자기 말로 편집했다고 볼 수 없다. 표절시비가 있었던 때도 아니고 게다가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며 기록한 복음서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바꾸어 기록했을리도 만무하다.이는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이 서로 다른 말로 증언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이다. 이는 바로 앞부분에서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대신에 그 자리에서 날마다 가르치신 것을 두고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을 모두 소집하여 대책회의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절에서 "예수께 말하기를 우리에게 말하라 무슨 권세로 이런일들을 하는지"라고 심문하는 말투로 말한 것이다.
"이런 일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기에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일들" 이라는 말은 명백히 바로 앞부분에 나온 성전 청결사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일들"이라는 말은 성전에서 가르치신 것 뿐만 아니라 성전청결사건도 동시에 가리킨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런 일들"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 뿐만 아니라 죄를용서하고 안식일에 치료하신 일들을 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바로 앞부분과 연결하기 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문맥을 두고 해석한 것이다.
가리키는 말이 나올 때는 항상 바로 앞부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19:46절에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일이 나오지만 19:47절에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신 일이 나온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것은 성전 이방인의 뜻의 본래 기능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능을 회복시키시려는 것이지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란 예수께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일도 포함되겠지만 그 근본적은 목적은 성전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날마다 가르치신 일이일 것이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런 일"을 성전에서 가르치신 일로 해석한다.
바로 이어서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은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권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냐 아니면 사탄이나 어떤 악한 영적 존재가 준 것이냐를 물은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말로 들려주시고 기적으로 보여주셨다. 보여주시며 들려주심으로 가르치시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셨다. 그러한 장면을 보고 놀랐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세는 아닐 것이라며 이렇게 죄인을 심문하듯 물은 것이다.
그러자 3절에서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대답하시며 말씀하신 것은 "나도 너희에에 한가지만 묻겠으니 내게 말하라"라는 것이다. 질문에 직접 답하시기 보다는 질문을 질문으로 대응하고 계신 것이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시 랍비들이 자주 사용하는 토론 방식이다.
그 질문은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는 것이다. 하늘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이 침례를 주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나 아니냐는 질문이다. 요한이 만약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로 회개의 침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러 왔다며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야라고 했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신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권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모든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소집하여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그들은 서로 의논하기를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영적 세력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회의 결과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그 죽일 증거를 찾기 위해 죄인을 심문하듯 그 권세를 누가 주었는지 물은 것이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르다 보니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세인지 아닌지도 자신들이 결정한 것이다.
오늘날도 목회자나 평신도나 할 것없이 교회에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어 있다. 특별히 목회자는 가르치고 권면하고 선포하는 일 이외에는 겸손히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안그러면 하나님 자리에 제일 먼저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가 낮은 자리에서 종의 모습으로 섬기지 않으면 반드시 오늘 말씀에 나온 산헤드린 공회원들처럼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의 주인이 되어 예수님보다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