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41-44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방문하신 것을 알지 못해서 멸망하게 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이 옷을 깔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왕이 오셨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멈추게 해 달라고 예수께 항의를 했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며 찬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멸망할 예루살렘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장면이다.
41절은 그리고 그가 가까이 오셨을 때 그 성을 보시고 그녀에 대해 우셨다고 했다. 예루살렘 전체가 보이는 올리브산에서 나귀 새끼를 타고 내려오셔서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 예루살렘 성문 가까이에 도착하셨을 것이다. "그녀 위에" 라는 표현이 도시나 나라 위에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기근을 내리거나 재앙이나 분노를 쏟아놓는다는 뜻으로 쓰인 경우를 구약 예언서에서 볼 수 있다. 특별히 에스겔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의 표면 위에 쏟아놓으시는 경우에 쓰인 것을 볼 수 있다(겔 14:13, 19, 22; 22:31). 그렇기 때문에 원어에서 예수께서 그녀에 대해 울었다는 말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표면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시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44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방문하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들도 "wept over it" 번역했다.
42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예루살렘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시며 예루살렘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은 "만약 너도 오늘 평화를 향한 일들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는데 그 일들이 네 눈으로부터 감추어져 있구나" 라는 것이다. 이 예루살렘을 39절에 나온 바리새파 사람들의 집합과 연결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예루살렘을 여인으로 비유하며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이 바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을 수건으로 가리운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43절은 42절의 이유를 설명한 내용으로 42절에 딸린 문장이다. 그 날들이 네 위에 온다는 것이다. 원수들이 토성을쌓고 너를 둘러 포위한 뒤 쥐어짜듯 조여온다는 것이다. 조여온다는 말이 예루살렘을 포위한 원수들이 계속해서 공격해 오는 장면을 나타낸다. 대적들이 실제로 포위망을 좁혀오며 쥐어짜듯 압박해오는 것이 아니라 포위하고 바리케이트를 친 상태에서 계속해서 공격을 해 오는 장면이다.
44절은 땅바닥에 메어친다는 말로 시작을 한다. 너와 네 품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메어친다는 것이다. 이는 여인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데 군병들이 와서 그 여인과 어린아이를 함께 땅바닥에 메어치는 장면이다. 같은 그림이 호세아 10:14절에서도 나온다. 호세아에서는 어미와 자식이 함께 부숴졌다고 했다. 에스겔 31:12절에서는 큰 나무가 베어져 땅바닥에 쓰러지는 그림언어료 표현했다. 따라서 이는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있는데 그 아이의 발목을 잡고 빙빙 돌려 바위나 단단한 땅바닥에 그 머리를 메어치는 장면이다. 아이 뿐만 아니라 그 어미 역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돌로 지은 성벽이나 성전과 왕궁 등이 완전히 다 파괴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너를 돌아보신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예루살렘을 찾아오셨는데도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시며 예루살렘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신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하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방문을 알지도 못했기에 실제로 예루살렘은 AD 70년 유대 로마 전쟁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인 성취이고 마자막날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적한 자들은 완전히 멸망함으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