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20-23 세번째 종은 주인이 맡긴 돈을 일할 때 땀을 닦는 수건으로 싸두었다며 주인에게 내놓고 주인은 날강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자 주인은 그 종의 말에 따라 재판한다며 어째서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게 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했다.
이전 말씀에서는 주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할 때에 열 므나를 남긴 종과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을 칭찬하며 각각 열 고을과 다섯 고을 다스릴 권세를 주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자신이 받은 므나를 잘 보관했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종을 주인이 책망하는 내용이다.
20절에서 세번째 종이 등장한다. 그는 와서 말하길 "주여 보십시오!" 당신의 므나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수건에 싸서 놔둔채로 갖고 있었습니다" 라고 했다. 마태복음에서 나온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고 했는데 여기 나온 종은 수건에 싸서 집안 어디엔가 그냥 놔두었다는 것이다. 땅을 파고 묻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한 것이다. 이 종은 주인이 맡긴 금액이 큰 것이 아니기에 그냥 수건에 싸서 집안 한쪽 구석에 던져둔 것이다.
그러나 한 므나는 약 3개월 품삯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목에 걸치고 땀을 닦는 수건으로 싸서 아무데나 던져두어도 될만한 돈은 결코 아니다. 만약 자기 돈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의 돈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두는 것은 어리석거나 반역의 음모를 품고 있는 것이다.
본래 열 명의 종에게 므나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세명의 종만 나온 것에 대해 해석이 엇갈린다.5세기 사본에는 18절의 두번째 사람도 관사와 함께 다른 사람이라는 말로 되어 있고 세번째 사람에게도 관사와 함께 다른 사람이라는 말에로 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본래 종은 열 사람이 아니라 세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사람이 다른 나머지 사람의 대표로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타당하다. 열 명을 다 말하기 보다는 그 중에 대표가 되는 세명만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1절에서 이 사람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자신이 왜 주인께 받은 므나를 땀 닦는 손수건에 싸 두었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나는 당신을 계속해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두려워하고 있었는가 하면 새번역은 야무진 사람이기 때문이라 했고 개역은 엄한 사람이라 했다. 이 말의 원어의 의미는 혀를 말려서 거칠게 만든다는 뜻이다. 혀는 인간의 몸에서 겉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부분 중 가장 부드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혀 조차도 바싹 말라서 거칠다면 그 사람의 말은 얼마나 거칠지 상상하게 하는 말이다.
그 주인이 얼마나 거칠고 엄격한지를 이어서 설명하는데 맡겨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도 않은 것을 거둔다고 했다. 맡겨두지 않은 것을 취한다는 말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돈을 맡겨두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둔다고 한 말은 농부가 재배한 농작물을 적들이 쳐들어와서 취하는 장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인은 날강도와도 같다는 뜻이다.
주인이 맡긴 귀한 돈을 일할 때 목에 두르고 땀을 닦는 더러운 수건으로 싸 두었다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주인에 대한 반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은 은행강도와도 같고 농작물을 빼앗아가는 적군과도 같다고 표현한 것은 주인에 대한 반감을 말로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그에게 말하길 "나는 데 입으로부터 너를 재판한다" 라고 말한다. 더러운 손수건에 싸 둔 것이 반감을 표현한 것을 분명히 알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런데 그 입으로 주인을 날강도라며 욕을 했기에 그 말한 그대로 재판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은 그 종이 입으로 내뱉은 말을 말의 순서만 바꾸어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이 말이 이 종의 유죄를 선고하는 근거라는 것이다.
23절은 주인이 이 종에게 추궁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어째서 내 은을 은행에 예금하지 않았느냐?" 라고 주인은 말했다. 원어에서 은행에 예금한다는 말은 탁자위에 주지 않았느냐는 뜻이다. 탁자란 돈을 바꾸어주고 수수료를 떼거나 돈을 맡아주고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사람들의 탁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맡겼더라면 주인이 돌아왔을 대 최소한 이자라도 받았을 것 아니냐고 하는 것이다. 이 종은 주인을 극도로 혐오해서 의도적으로 더러운 땀수건으로 싸서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다가 그 더러운 수건을 펼치며 주인의 돈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 종은 마음으로 이미 주인을 몰아내고 자신이 주인의 자리에 있었다. 이 종은 주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그 귀족이 왕위를 받지 못하고 돌아오면 더러운 손수건으로 싼 돈을 던져주며 칼을 들이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주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많은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적장에게 잡혀온 포로처럼 억울하고 분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크건 작건 그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미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기회만 되면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역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이 종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