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8-10 삭개오는 예수께서 자신을 받아주신 것에 감격하여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법정 최고형인 네배로 갚겠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잃은 양을 찾으러 오셨다며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삭개오를 보시고 네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하시자 삭개오는 기쁜 마음으로 영접했지만 사람들은 예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다. 이어지는 말씀은 삭개오가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배로 갚겠다고 하자 예수께서 구원을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8절은 원어에서 "그러자 서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일어서서 말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들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그런데 6-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미 삭개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라 들어온 제자들만 있는 자리에서 그런 선언을 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삭개오는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담장이 오늘날 미국처럼 6피트 정도 높이는 아니었다고 본다면 사람들은 삭개오의 집 담장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상황에서 했을지도 모른다.
삭개오는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소유라는 말은 "현재 존재하는 것" 이라는 뜻이다. 재산이 아닌 소득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의미는 현재 삭개오가 갖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기에 재산을 의미한다고 본다. 절반은 재산이나 소득의 20 퍼센트를 주라는 랍비들의 일반적인 요구사항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주겠다는 말은 원어에서 현재형이기에 삭개오는 현재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그렇게 소유의 절반을 나누어주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NIV가 "now I give" 라고 한 것은 지금 그렇게 주고 있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번역한 것이다. 만약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해석한다면 ESV나 KJV나 RSV처럼 "now"를 뺀 채 "I give" 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문맥을 보면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이기에 NASB나 NLT는 "I will give" 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볼 때 나사로는 현재 자신이 행하고 있는 자선활동을 자랑한 것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기에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는 현재형으로 볼 수 있다. 지금부터 계속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다.
또 이어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배나 갚겠다고 삭개오는 말했다. 레위기 6:2절과 민수기 5:7절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본래 빼앗은 것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해서 갚는 것이다. 소나 양의 경우는 그렇기 때문에 이는 율법의 가르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소나 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분의 일을 더해 주는 것이 랍비들의 가르침이라며 이는 로마법의 영향이다. 요셉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법에 따른다 해도 법이 요구하던 것은 네배를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Antiquities xvi. 1-3). 로마법에서 네배라고 한 것은 최악의 경우도 네배를 넘지 못한다는 의미로서 법정 최고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삭개오가 그렇게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갚겠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법정최고형을 따라 갚겠다는 뜻이다.
9절에서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길 "오늘 구원이 이집에 있게 되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하셨다. "그에게" 라는 말을 삭개오에 관해 무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삭개오에게 말씀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밖에서 듣고 있던 무리들에게도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당시 삭개오는 유대교에서 쫓겨나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며 회복을 선언하신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하는 것은 삭개오가 이렇게 서약을 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신 것 자체가 예수께서 이미 일방적으로 회복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러한 서약은 예수께서 받아들이신 전제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가 변화되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먼저 일방적으로 회복시켜 주셨고 그 결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따라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이다.
10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이어가기에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신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인자는 잃은 자를 찾고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찾는다는 말은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그림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에스겔 34장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에스겔 34장에서는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잡아먹고 이용만 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을 책망하며 여호와께서 흩어진 양 떼를 찾아 모으시고 치료해 주시며 기름진 목초지에서 잘 먹이셔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처럼 유대교 지도자들이 울타리 밖으로 내쫓아버려서 산과 들을 방황하고 있는 양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 모으러 오셨기 때문에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회복을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 오셔서 불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녀를 삼아 주셨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그러한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