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15-17 사람들이 예수께 젖먹이 계층을 데려와 축복해 주길 원할 때 제자들은 특권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물리치며 계속해서 꾸짖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부르며 제자들에게 이런 자들처럼 낮아져서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세리가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죄인이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의롭다 해주셨다며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인자가 재림할 때 찾으시는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히 하나님 나라를 받드는 사람이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15절은 원어에서 "그런데" 라는 말로 연결되기에 앞부분과 연결된 가르침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세리처럼 낮아지는 자를 찾으신다는 가르침과 연결된 가르침인 것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이와 비슷한 가르침이 이혼문제를 가르치시는 것과 연결되어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가르침은 탐욕을 버리라는 가르침으로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갖지 않은 상태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찾으시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의 성경 해석자들은 누가는 마가의 것을 가져다가 편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어린아이라는 말을 썼지만 누가는 젖먹이 라는 말을 썼다. 게다가 원어에서 마가복음과 비교해보면 달라도 정말 많이 다르다. 보고 쓰면서 보고 베낀 것이 들통날까 해서 조금 고쳐쓴 수준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비슷한 내용이 나오면 다른 자료를 보고 조금 수정해서 베꼈다고 하는 것은 복음서가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꾸며쓴 어떤 자료를 보고 베꼈기에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보고 베끼지 않았다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기적이나 가르침이 그렇게도 비슷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들을 그 목격자들이 구두로 증거하던 것을 복음서 기록자가 각자 따로 기록했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공생애동안 비슷한 가르침을 단 한번 하셨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원어를 면밀히 대조해 보면 목격자들이 구전으로 전하던 것을 각자가 기록했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가르치시는 상황도 마태 마가와 다르기 때문에 예수께서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내용을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태와 마가가 어린아이 라는 말을 쓴 부분을 보면 관사가 없다. 그러나 누가가 사용한 젖먹이라는 말에는 관사가 있다. Marshall은 이에 대해 이 가르침의 배경은 속죄일 저녁에 장로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어린아이를 데려와서 축복기도를 받는 장면이라고 말하면서 관사를 사용한 것은 젖먹이로 대표되는 계층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Marshall, 682). Marshall은 관사를 사용하여 젖먹이 계층이라고 말한 것은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자들이 보고 그들을 꾸짖었다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 주변에서 예수님을 호위하는 특권층인 것처럼 거만하게 행동하고 있는 장면이다. 원어는 계속해서 꾸짖고 있었다는 뜻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젖먹이를 예수께 데려와 축복 기도를 받으려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마태와 마가는 관사없이 어린아이라는 말을 썼고 한번 꾸짖었다고 했기에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가르침의 상황에서는 어느정도 자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가르침의 상황은 수많은 부모들이 젖먹이들을 데려와 예수께 축복 기도를 받으려 했다는 뜻이다.
16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젖먹이들을 불렀다고 했지만 원어는 단지 그들을 불렀다는 뜻이다. 걷지 못하는 젖먹이들이기에 그들을 안고 온 부모들이 예수께 까가이 몰려온 장면이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그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하셨다.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하셨기에 15절에서 관사를 사용한 젖먹이라는 계층은 분명히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17절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변함없는 진리를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 쓰시던 공식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단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개역에서 받들지 않는다고 번역한 것은 떠받든다는 뜻처럼 오해하기 쉽기에 개역개정에서는 새번역처럼 받아들인다는 말로 고쳐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새번역은 단순히 들어가지 못한다고 번역한 것은 원어의 중요한 단어를 놓친 것이다. 원어는 부정어가 두개나 들어있어 절대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역에서 사용한 "결단코" 라는 단어를 빼놓고 번역하면 안된다.
오늘 말씀에 나온 젖먹이 계층이라는 말이나 어린 아이라는 말은 순진하거나 순수하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갖지 못한 가장 낮은 신분의 계층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린아이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찾아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신다는 뜻이다. 제자들처럼 특권의식을 가지고 고압적인 자세로 사람들을 평가하여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쫓아내는 식의 태도를 갖는다면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찾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 안에서 어린 아이처럼 낮은 계층이 되어 무시 당하고 멸시를 받으면서도 참고 견디며 사람들의 심부름을 하며 그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